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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젖소 배 속에 IoT 캡슐 넣고 … 우린 가족여행 다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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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젖소를 키운다는 얘길 듣고 바로 달려갔다. 충남 예산군이었는데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니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서 110㎞ 거리였다. 금세 도착할 줄 알았는데 웬걸, 차도 막히지 않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지만 2시간30분이나 걸렸다. 국도를 거듭 갈아타야 닿는 오지였기 때문이다. 목장 주인과 인사를 나눌 때 또 한 번 막연한 예상이 깨졌다. 밀짚모자에 장화 신고 장갑 낀 목장 주인을 머릿속에 그렸는데,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에 다니는 말쑥한 신사 차림이었다. 영훈목장의 조상훈(43) 대표였다.

IoT가 4차 산업혁명 가속화해 #로라·NB 전용망 깔리기 시작 #스마트홈 이미 100만 육박하고 #여행가방·금고·밥솥도 IoT 가능 #공장부터 동물까지 대상 많지만 #핵심 센서 거의 다 해외서 수입

이런 외진 농촌의 축산농가에서 IoT를 쓰다니, 뭐가 뭔지 차근차근 파악하기 위해 조 대표에게 기본적인 사항부터 물어봤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충남 예산군에서 소 120마리를 키우는 조상훈 영훈목장 대표가 IoT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소의 위에 IoT 캡슐을 넣어 스마트폰으로 질병과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충남 예산군에서 소 120마리를 키우는 조상훈 영훈목장 대표가 IoT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소의 위에 IoT 캡슐을 넣어 스마트폰으로 질병과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젖소는 모두 몇 마리 키우나.
“120마리다.”
IoT는 몇 마리에 투입됐나.
“60마리에 쓴다. 더 늘려 나갈 계획이다.”
어떻게 활용하는지.
“소의 신체 변화를 감지하는 IoT 캡슐을 소의 위(胃)에 넣어두고 스마트폰으로 소가 아픈 시점을 24시간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번호가 매겨진 소들을 한눈에 파악한다. 치료나 돌봄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일이 없어졌다.”
신속히 대응할 일이 그리 잦은가.
“긴급 상황이 수없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발정하는 걸 맨눈으로 관찰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곧바로 감지된다. 분만 때는 24시간 전에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구제역도 전에는 손쓰기 어려웠는데 바로 감지된다. 수의사한테 즉각 연락해 해열진통제로 초기 대응에 나설 수 있다.”
효과를 수치화할 수 있나.
“지난해 9월부터 IoT를 활용한 뒤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평소엔 1년에 대여섯 마리 죽어나간다. 쓰러지고 나서야 원인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젖소는 처음 3년 투자하고, 그다음 3년간 젖을 짜서 이득을 낸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젖 짜는 기간을 최대한 길게 만들어야 하는데 IoT 도움을 톡톡히 본다.”
일손도 줄었겠다.
“120마리를 키우려면 최소 8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IoT 활용으로 나 혼자 주로 한다. 아버지, 어머니도 젖소를 돌보지만 주로 집에 계시는 편이다. 전에는 분만에 대비해 아버지가 밤새 젖소 곁을 지켰다. 지금은 가족과 외식 나가고 여행도 한다.”
IoT 투입과 운영 비용은 어떻게 되나.
“스마트폰으로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캡슐 한 개가 15만원인데 100두(頭)에 투입하면 1500만원이다. 한 번 넣어 두면 젖소가 죽을 때까지 6~7년간 쓴다. 여기에 IoT 전용망 한 달 사용료가 마리당 3000원이다. 부담이 매우 적은 편이다.”
반추할 때 캡슐을 토해내는 경우는 없나.
“소의 위 4개 가운데 캡슐은 첫 번째 위에 들어간다. 캡슐 크기가 가로 10㎝, 세로 2㎝인데 위에서 넘어오는 통로가 2㎝보다 작아 그냥 머물게 된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젓소를 키우는 IoT 목장. 120마리 가운데 60마리에 적용되고 있다. [김동호 기자]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젓소를 키우는 IoT 목장. 120마리 가운데 60마리에 적용되고 있다. [김동호 기자]

목장의 IoT 시스템을 관리하는 문태희 SK텔레콤 IoT 매니저에게 캡슐이 젖소의 질병이나 분만 타이밍을 알아내는 원리를 물어봤다. “동물은 사람처럼 아프면 체온이 변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알아내기 어려워요. 소는 자주 체하는데 그러면 열이 내리고, 구제역에 걸리면 열이 오르죠. 체온의 변화로 이상을 감지합니다.”

인공지능(AI)과 함께 IoT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파괴적 기술’의 간판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영훈목장은 그 까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IoT는 예고만 무성했을 뿐 실제 현장 적용은 본격화하지 못했다. 기존 이동통신망(LTE)은 요금이 비싸 IoT를 쉽게 쓸 수 없어서였다.

IoT 캡슐이 들어간 소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디지털 식별 표시를 통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김동호 기자]

IoT 캡슐이 들어간 소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디지털 식별 표시를 통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김동호 기자]

그러나 IoT 전용망이 잇따라 구축되면서 IoT 혁명이 속도를 내고 있다. IoT 전용망은 LTE와 달리 절전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망 접근이 개방된 로라(LoRa)망, 그리고 접근이 폐쇄돼 있지만 데이터 전송 용량이 큰 협대역(NB)망이 있어 용도에 맞춰 골라 쓸 수 있다. 문 매니저는 “젖소에 들어간 캡슐이 6~7년 지속되는 건 전력 저감 IoT 전용망 덕분”이라며 “LTE망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골 농가의 젖소에 IoT를 연결시킬 정도가 됐으니 일상생활과 제조업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IoT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그 여파는 집·공장·도시 인프라 등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스마트홈·스마트공장·스마트도시는 모두 IoT를 기반으로 한다. 로봇·자율주행차·드론 역시 IoT가 융합돼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반추동물인 소의 4개 위 가운데 첫째 위에 넣는 IoT 캡슐. 소가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김동호 기자]

반추동물인 소의 4개 위 가운데 첫째 위에 넣는 IoT 캡슐. 소가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김동호 기자]

LG유플러스의 IoT망을 통해 스마트홈을 구축한 가정은 국내 1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이 망이 깔린 가전제품을 굳이 새로 살 필요는 없다.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시범센터에 가봤더니 스마트폰에 설치한 스마트홈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외출 시에도 가스불을 차단할 수 있고, 침대에 누워 음성 인식 서비스로 전등과 TV를 끌 수도 있었다. 김용식 LG유플러스 IoT팀장은 “집에 혼자 남겨진 강아지의 냉난방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의성만 있으면 적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IoT의 용도는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기도 고양시는 IoT를 활용해 거리의 쓰레기통을 비운다. 한국전력은 도로·교량의 가로등 검침에 IoT를 쓰고 있다. 산업 간 융합도 활발하다. SK텔레콤이 샘소나이트와 손잡고 개발 중인 여행용 캐리어는 가방 안에 IoT칩을 넣어두면 도난이나 분실 걱정을 덜 수 있다. 주인과 30m 떨어지거나 컨베이어 벨트에 가방이 올라오면 바로 신호를 보내준다. 융·복합이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확인할 수도 있다. 젖소 캡슐을 개발한 벤처기업 라이브케어는 설립(2012년)한 지 5년밖에 안 됐지만 미국·일본·대만까지 진출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IoT의 격전장은 스마트공장이다. 경기도 안산 동양피스톤의 양준규 사장은 “ICT를 기반으로 삼아 IoT 시스템을 구축하자 경영 효율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스마트공장이 3만 곳으로 늘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소의 건강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자 게시판이다. [김동호 기자]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소의 건강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자 게시판이다. [김동호 기자]

이 같은 IoT 기술을 뒷받침하려면 센서를 비롯한 디바이스와 연동 기술을 포함한 플랫폼이 강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국은 IoT용 스마트센서 소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중국도 센서 기술 확보를 위해 미세전자제어기술(MEMS)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

아쉽게 우리나라의 기초 기술과 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 센서 소자 수요는 대부분 선진국 수입품으로 채워진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센서 시장 점유율은 1.6%에 불과하다. 반도체 강국답게 4차 산업혁명의 윤활유인 IoT 기반을 다지는 노력이 시급하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