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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신종 마약, 편의점의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면 추적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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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의 세상만사 

경기도지사 아들이 필로폰 4g(130회 투약분)을 중국에서 40만원 주고 쓱~ 구했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1만4214명.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 기준(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20명 미만, 국내는 1만2000명)을 넘어섰다. 이 기준을 넘어선 건 십수 년 만이다. 오히려 남모(26)씨가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요즘 가장 핫한 즉석만남 채팅앱인 ‘앙톡’에 “‘얼음’(마약 지칭 은어)을 갖고 있는데 같이할 사람 찾아요”라는 글을 올린 뒤 여성에게서 오케이 답을 받고 함께 ‘총’(필로폰 지칭 은어) 맞을 생각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타난 사람이 ‘언더 커버’ 남성 마약 수사관이었으니 말이다.

2016년 마약청정국 지위 깨져 #비트코인 거래 물건은 마약뿐 #신종 마약 유엔 보고 739종 #강남 ‘호빠’ 직원 단체 원정 투약 #함께 수감된 교도소서 정보 더 얻어 #재범률 39%대 … 치료 우선해야

남씨 검거는 마약 전과자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한 일반인들의 마약류 소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마약은 특이한 범죄다. 가해자가 곧 피해자다. 도박과 비슷하다. 가수 등 연예인이 즐겨 찾는 대마초는 아편처럼 몽롱하다. 속칭 ‘뽕쟁이’들에게 백색가루(필로폰)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환각에 따른 현실 도피는 공동체를 좀먹는다.

['엑스터시'와 '도리도리' 등으로 통칭되는 MDMA]

['엑스터시'와 '도리도리' 등으로 통칭되는 MDMA]

26일 오전 11시 대검찰청 6층 마약수사과 사무실.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과 소속 김모 수사관이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사이버 마약과의 전투 모드로 트랜스포밍했다. 모니터에 ‘인터넷 마약류 범죄 모니터링 시스템’의 초기 화면이 뜨자 신속히 접속했다. “PC방에서는 이 시스템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전국 지검·지청의 마약 검사 80여 명과 수사관 250여 명이 접속 권한을 갖고 있고요. 이곳에 들어와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마약류 판매 불법 광고나 밀거래 행위를 상시 적발합니다. 불법 정보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차단 또는 삭제를 요청하고 사안이 심각한 건 수사에 착수합니다.”

김 수사관이 시스템을 구동하고 검색 기간을 한 달(8월 27일~9월 26일)로 설정하자 구글·빙·네이버·유튜브·트위터·바이두 등 10여 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글 가운데 ‘얼음’ ‘시원한 술’ ‘아이스’ ‘빙두’ 등 마약류 은어가 포함된 글이 줄줄이 자동 검색됐다. 은어는 미리 자체 등록해 둔 것으로 총 53개다. 그가 검색창에 다시 모바일 메신저를 ‘위커(Wickr·미국)’ ‘텔레그램(독일)’ ‘위챗(중국)’ 등으로 압축하자 ‘케타민(마취제·데이트 강간 약물) 팝니다’ ‘LSD(무색·무미·무취 환각제) 팝니다’ 등 범죄 혐의가 짙은 글들과 ‘작대기·아이스·크리스탈(셋 다 필로폰 지칭)’ 등 마약류 은어들이 추려졌다. 전국 지청별로 ‘수사 중’ 표시가 된 사건들이 즐비했다.

김 수사관은 “대개 고교·대학생, 사기 전과자의 금품을 노린 사기가 많다. 특히 하나도 구하기 어려운 필로폰·물뽕·대마를 전부 판다고 선전하면 무조건 사기”라고 귀띔했다. 대검 강력부(배성범 검사장)에 따르면 불과 4~5년 전만 해도 미미했던 인터넷 마약류 거래 단속 건수는 요새 전체의 13~14%까지로 늘어났다. 올해도 8월 말까지 인터넷 마약 사범이 1300~1400명에 달한다. 최근 사이버 마약 거래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포통장 등 차명계좌 거래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 결제로 진화한 것이다. 실제로 일반 검색엔진으로는 사이트 검색이 불가능한 ‘딥웹(다크넷)’을 통해 대마를 구입해 피우던 부산의 고교 동창생 4명이 아예 시내 주택가 상가건물 5층에서 대마를 재배해 1억5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받고 판매했다가 적발돼 구속 기소됐다. 이승호 대검 마약과장은 “추적이 어려운 딥웹에서 대마 판매 광고를 하고 입금이 확인되면 은닉 장소를 알려주는 속칭 ‘던지기’식 거래였다”고 소개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마약류사범 추이]

[최근 10년간 국내 마약류사범 추이]

마약 범죄 전문가인 박진실(45·여) 변호사는 “내 의뢰인 최모씨도 판매자 요구에 따라 비트코인으로 마약 대금 70만~100만원을 지급했다가 체포됐다. 요즘엔 일부 편의점에서도 비트코인을 살 수 있다. 그걸로 지불하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라 거래하는 물건이 없다. 유일한 게 마약이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도 동의했다. “편의점에서 쿠폰이나 선불카드 형태의 비트코인을 구매할 수 있다. 5만원·10만원 단위로 충전이 가능하다. 마약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안다”고 말했다. 회원 가입하고 로그인해야 하는 비트코인 거래소와 달리 흔적이 남지 않아 익명성이 더 보장된다고 한다.

스마트폰 즉석 만남 채팅앱은 마약 유통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투약자들이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투약 파트너 찾기 창구로 애용하면서다. 마약 담당 수사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종종 수사기관의 함정수사 논란이 불거진다.

‘거래 방식을 비트코인으로 한다’고 적어 놓은 게시 글. [조강수 기자]

‘거래 방식을 비트코인으로 한다’고 적어 놓은 게시 글. [조강수 기자]

요즘 마약 범죄의 추세는.
“동성애자들의 마약 소비와 검거 건수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 중에 에이즈 환자가 상당히 많다. 현재 내 의뢰인 중 에이즈 환자가 많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에이즈 환자가 20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 탈북자들이 마약을 밀반입하는 속칭 ‘지게’ 역할을 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요즘 일부는 태국·필리핀 등 해외에 나가 마약을 하거나 사 갖고 입국하기도 한다. 박 변호사는 “강남 호스트바 직원들이 단체로 나가서 하고 온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마약 사범들에게 귀국 시 소변검사를 필수적으로 받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안산시와 조선족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동에서도 마약 사범이 대거 적발된다. 신종 마약류는 유엔에 보고된 것만 739개인데 대마 초콜릿·대마 쿠키를 비롯해 ‘합성대마’가 전체의 32%를 차지한다.

마약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재범률이 39%대에 이른다. 재범률이 높아 가석방이 잘 안 되고 수형생활을 엉망으로 한다. 교정기관도 힘들어한다. 마약 사범들은 같은 사동에 수감된다. 단순 초범도 교도소 안에서 더 은밀하게 더 많은 공급 루트를 알고 출소하는 구조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약 투약자들은 뇌질환 환자로 봐야 한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기소유예·집행유예 등을 선고하면서 치료명령을 부과해야 한다. 미국에는 1년짜리 장기 관리 프로그램이 있다. 구속하는 대신 1년간 외출 시간·소변검사 등을 철저히 관리·통제한다. 국내에서도 마약 중독자가 자청하면 강남을지병원 등 24개의 국가 지정 전문 병원 등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 의사의 신고의무 조항도 없어졌다. 중독자들이 그걸 몰라서 주저한다.”

필로폰 등 마약에 중독되면 잠을 못 자고 빼빼 마른다. 거짓말을 자주 하게 되고 가정도, 일도 엉망이 된다. 결국 잠수를 타게 된다. 사회적 손실은 그만큼 커진다. 박 변호사는 의뢰인 최씨를 조사하던 경찰들이 ‘그대로 뒀으면 죽었을 텐데 붙잡혀 다행’이라 하더라고 전했다.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는 게 마약입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만큼 마약은 끔찍하다.

조강수 논설위원
※기사 작성에 이유진(중앙대 사회복지학과 3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