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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디트로이트가 재채기하면 한국 부평은 독감을 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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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의 산업지도 

지난 5일 부평공장에서 2017년 임투 승리를 위한 중앙쟁의대책위 출범식을 하는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금속노조 한국GM지부 홈페이지]

지난 5일 부평공장에서 2017년 임투 승리를 위한 중앙쟁의대책위 출범식을 하는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금속노조 한국GM지부 홈페이지]

미국 시애틀은 아마존이 먹여살린다. 아마존이 2010년 시애틀에 둥지를 튼 뒤 4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고, 7년 반 동안 임금으로 257억 달러(29조원)가 쏟아졌다. 아마존 제2본사 유치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의 수십 개 도시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경기도 평택과 파주에 일자리와 세수가 늘어나는 것도 각각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과 LG디스플레이 공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GM 본사와 부평공장이 자리 잡은 인천 부평도 한때 그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또다시 불거진 GM 철수설 #생기 잃은 자동차 메카 부평 #GM 글로벌 전략에 한국GM 휘청 #3년 연속 적자에 자본잠식 상태 #군산공장 가동률 18% 불과 #노조는 일자리 지키려 안간힘

18일 인천시 부평구의 한국GM 부평공장 서문 주변 상가. 저녁 시간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14년간 치킨집을 운영해 온 김모(46)씨는 “이곳 상권은 부평공장이 먹여살리는데 GM 철수설이 돌면서 매출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며 “정말 GM이 철수하기라도 하면 지역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왕근 부평구청 홍보담당관은 “GM 철수설보다는 한국GM의 적자 누적과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GM의 최근 3년 누적 적자는 2조원에 육박한다. 올 1분기에도 2589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자기자본이 완전 잠식됐다. 2013년 말 한국GM의 자회사인 유럽 쉐보레 판매법인이 글로벌GM의 결정으로 유럽에서 철수하면서 한국GM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GM은 GM이 유럽에 공급하는 쉐보레 브랜드 차량의 90%를 수출해 왔다. 전망도 밝지 않다. 올 3월 한국GM의 완성차와 KD(Knock Down·완성품이 아닌 부품을 수출, 현지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방식) 부품의 유럽 수출 통로였던 GM의 오펠과 복스홀이 프랑스 푸조시트로앵(PSA)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GM 철수설이 다시 불거진 계기는 산업은행이 지난 7월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에게 보고한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였다. 산업은행은 한국GM 주식 17%를 갖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그룹 부도로 동반 부실화한 대우자동차를 우여곡절 끝에 2002년 GM에 매각했다. GM이 현금 4억 달러를 출자하고 15년간 지분 매각을 제한하는 조건이었다. 이 조건이 10월 16일이면 풀린다. 산업은행은 보고서에서 17% 소수 주주의 한계를 거론하며 “GM이 지분 매각 또는 공장 폐쇄 등을 통해 철수 실행 시 저지 수단 부재”라고 못 박았다.

한국GM은 “관행적으로 노사협상 중에는 공장 내부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 취재를 막았다. 한국GM은 현재 임금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노사 입장 차가 커 부분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국GM의 목줄을 쥐고 있는 메리 바라 GM 회장. [중앙포토]

한국GM은 “관행적으로 노사협상 중에는 공장 내부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 취재를 막았다. 한국GM은 현재 임금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노사 입장 차가 커 부분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국GM의 목줄을 쥐고 있는 메리 바라 GM 회장. [중앙포토]

글로벌GM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 않다. 2014년 GM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메리 바라 회장은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지는 선택과 집중으로 글로벌 사업을 재편 중이다. 호주·러시아·유럽·남아공·인도 등 성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시장에서 생산공장을 폐쇄하거나 내수 판매를 포기하고 중국·미국 등 주요 시장과 전기차·자율주행차·카셰어링 등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GM은 철수설을 부인한다. 박해호 한국GM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한국GM은 글로벌 시장에서 GM의 주력 제품을 만드는 필수적인 생산시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GM이 글로벌 본사의 투자 축소 대상인 ‘선택적 세계 시장(Selected GM International Market)’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인천본부는 지난주 발표한 ‘최근 인천 지역 자동차 산업 현황과 발전 과제’ 보고서에서 “판매가 저조하고 노후한 일부 생산 차종을 정리하거나 생산 물량을 축소하는 생산 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GM의 생산 물량 축소는 현재 진행형이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GM의 물량 변동 흐름을 볼 때 완성차는 피크였던 2007년 대비 3분의 1이 줄었고 부품 생산은 역시 정점이었던 2012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고 분석했다. 현장의 위기감은 더하다. 특히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는 한국GM 군산공장은 임시생산중단(TPS)이 늘고 있다. 회사 측은 “군산공장 가동률은 50% 이하”라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국GM 관계자는 “한 달에 4~6일 정도만 정상 가동되고 있어 실제 가동률은 훨씬 낮다”고 말했다. 인천시가 파악한 군산공장의 2015년 가동률은 17.9%에 불과했다. 생산 현장에서는 지금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산라인을 일부러 늦춰 물량을 줄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장에서 ‘짭다운’으로 통칭된다. 다른 관계자는 “짭다운을 고려하면 가동률 저하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성국선 GM노조 군산지회 지부장은 7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지금 생산하고 있는 차마저도 야적장에 쌓아둘 공간이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에 처해 있어 도로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노조가 이번 임금협상에서 임금을 넘어서 ‘생산 물량 확보’와 ‘미래 비전 쟁취’를 핵심 구호로 내세우는 이유다.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의 경영 악화를 바라보는 노사 간의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고임금과 노사관계를 문제로 본다. 박해호 한국GM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구조 리스크와 노사관계 리스크는 글로벌GM의 단골 지적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GM 본사가 한국GM의 적자를 의도적으로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GM의 유럽 철수 ▶환차손을 비롯한 경영 실패 ▶본사와의 불투명한 이전가격 책정 등을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봤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재채기가 바다를 건너면 한국의 독감이 된다”며 “한국GM의 실적과 재무 상황은 GM의 경영 전략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의 지역구에 부평공장이 있다.

홍 의원은 회사와 노조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회사는 노조의 요구대로 생산 물량을 확보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노조는 회사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는 “회사가 생산 물량만 확보한다면 돌멩이를 맞더라도 내가 노조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GM은 어떻게 될까. 노조와 지역사회는 ‘30만 일자리 지키기 대책위’를 구성해 정부가 나서서 GM과의 새로운 협약을 체결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고위 당국자는 “일자리 문제는 안타깝지만 론스타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고용 충격을 줄이는 대책 이외에는 정부나 산업은행이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GM이 선의를 갖고 한국 시장을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2001~2002년 GM과의 매각 협상에서 봤듯이 GM은 협상의 고수”라며 “GM의 치밀한 수읽기가 벌써 시작됐다”고 말했다.

서경호 논설위원
※이 기사 취재에는 김솔(한양대 영어영문학과 4년)·이유진(중앙대 사회복지학과 3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