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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노키아와 애플의 운명…이노베이션과 디스럽션이 갈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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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냥해왔던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 1주일짜리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녀왔다. 이 대학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근처 NASA기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창업사관학교'로 불린다. 석학이며 성공한 창업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웨일과 피터 디아만디스가 공동 설립했으며, 구글과 NASA가 후원한다.

IT 기업 CEO의 미국 싱귤래리티 대학 일주일 체험기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창업가 배출해 '창업사관학교' 별칭 #최고의 강사진이 미래 준비와 기술발전에 대응 방안 집중 강의 #노키아·애플 등의 사례 통해 불확실성 속의 기업 생존법 탐구

싱귤래리티 대학을 알게 된 것은 2013년 서울대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 유사한 창업과정을 구상해봐 달라는 학교 요청 때문이었다. 그 때 이 대학이 신기술, 창업, 미래 준비에 차별화된 교육을 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 CEO로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혜안을 얻고 회사의 성장을 설계하고자 수강하게 되었다.

필자가 수강한 과정은 16주짜리 창업과정이 아닌 일주일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이었다. 과정 참가자들은 창업자·최고경영자·고위관료·재무투자자 등이다. 전세계로부터 참가가 늘어 이번에는 32개국 92명이 참가했다. 구찌와 액센추어의 대표, 미국 해병대 사령관 등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도 많았다. 강사진은 공동설립자인 디아만디스와 커즈웨일를 포함하여, 대부분 현장에서 뛰고 있는 분야별 최고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30분에 시작된 강의는 오후 9시, 10까지 이어졌다.

싱귤래리티 대학을 알려면 먼저 특이점(Singularity)과 기하급수적(Exponential)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특이점이란 커즈웨일이 그의 베스트셀러 『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기계적 지능이 발전하여 일반 상황에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바둑에서는 지난해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넘어서는 것으로 이미 특이점이 온 것이다.

기하급수적이란 기술발전에 대한 것으로, 발전속도에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과거 발전속도에 맞춰 미래를 예견하지만, 실제 기술 발전속도는 그 예견을 훨씬 뛰어넘는다. 극적인 사례는 인간 DNA 분석이다. 10여 년 전에 25억 달의 비용 시간도 수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2500달러에 몇 시간이면 DNA 분석이 끝난다. 10여 년 사이에 기술이 백만 배 발전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기술발전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지 못 하고, 이를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때라는 것이다. 이런 급변하는 미래를 미리 준비하여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수동적으로 맞을 것인가? 미래는 기다리는 자의 몫이 아닌 만들어 가는 자의 몫이다. 싱귤래리티 대학은 이런 큰 그림 아래, 기술발전을 활용하여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고, 이를 통하여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론, 마음가짐, 인적 네트워크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은 먼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이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을 논의하고,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와 방법론부터 시작한다. 당연히 IT·바이오·에너지 등에 대한 최첨단 교육을 받는다. 단순한 소개가 아닌 깊은 이해와 의미를 새겨주며,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인공지능과 IoT(사물인터넷)는 하나가 되고 모든 사물에 쓰일 정도로 작고 저렴해진다. 집안 모든 기기에 전자시계가 있듯이 이것도 그렇게 어디에나 존재하게 된다. 전자화폐 비트코인을 가능하게 한 블록체인 기술은 앞으로의 비즈니스 거래관행과 사회 통제방식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기술 이노베이션(혁신)과 비즈니스 디스럽션(파괴)의 차이점도 주요 주제로 논의됐다. 이노베이션이 기존을 더 잘하려는 것이라면, 디스럽션은 기존을 무용지물화하려는 것이다. 경영에서 이노베이션을 택할지 디스럽션을 택할지 생각하게 한다. 기존 선두기업은 전자에 집중할 것이고, 새로운 도전자는 후자를 추구할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먼저 개발하여 기술 이노베이션을 하고도 시장에 출시를 꺼려 비즈니스 디스럽션에 실패한 코닥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노키아 사례도 강의에서 집중 논의됐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애플보다 먼저 만들고 출시까지 했지만 선두에 있던 핸드폰 사업을 등한시 할 수 없어 스마트폰에 소홀했고, 이는 노키아 몰락을 불러왔다. 그리고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핸드폰 연장선상에서 접근했고, 애플은 모바일PC 입장에서 접근했다. 전자가 이노베이션이라면 후자는 디스럽션이다. 노키아 CEO인 스테판 엘럽의 과거 한탄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뭘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4가지를 꼽는다. 미래를 보는 눈, 혁신을 이끌 능력, 기술에 대한 이해, 인간존중의 사고이다. 이것 없이 기술만으로 미래를 기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화를 불러온다. 이를 인식하고, 기술·사회·인간 전체를 함께 생각하며 예술적으로 미래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론적 교육뿐만 아니라 실행방법까지 가르친다. 경영에서 이런 급변하는 모습만 강조하다가는 주변 지지를 얻지 못해 성과는커녕 그냥 구호에 그치고 만다. 『끌어당김의 힘 (The Power of Pull)』의 저자 존 하겔는 강의에서 기업에서 혁신을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식견을 얻었다.

과정이 끝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먼저 CEO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과정 말미에 한 참가자가 피력한 “안다는 것에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말이 깊이 다가왔다. CEO는 자기가 전부를 아는듯한(Know-it-all) 착각에 빠지기 싶다. 그간의 피상적 지식에서 벗어나(Unlearn), 이제라도 배우려는(Learn-it-all) 자세를 더 가져야 하겠다.

급변하는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기술자만의 몫이 아니다.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적 정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이슈를 통찰력 있게 살피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문제를 정확히 모르면서 먼저 해결책부터 제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설익은 해결책이 과연 합당할까?

한 켠 이런 생각도 맴돌았다. 기술세계는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데, 왜 사람들 정신세계는 오랫동안 하등 다를 바 없을까? 아무튼 몰입하여 자신을 재충전한 보람찬 일주일이었다. 회사의 도약을 추구하는 CEO라면 한번 권하고 싶다, 우리 경쟁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최두환 포스코 ICT 대표이사

최두환 포스코 ICT 대표이사

최두환
포스코 ICT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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