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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 완전 파괴'…화염과 분노와 뭐가 다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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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에서 원색적인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유엔 총회에서 원색적인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경고 발언이 역대 최고 수위에 이르렀다. 19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그는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을 수 없다” "로켓맨의 자살 임무" "타락한 정권" 등 역대 가장 강경하고 원색적인 발언을 동원했다.

김정은 정권 뿐 아니라 국가 전체 말살 위협 #WP "진의 해명해야" 백악관 "오바마도 쓴 표현" #자성남 유엔 북한대사 자리 박차고 떠나

이 가운데 ‘완전 파괴(totally destroy)’는 앞서 트럼프가 사용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와 비교돼 압박 강도와 진의가 주목된다.

화염과 분노는 지난 8월 8일(현지시각) 트럼프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났을 때 한 말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국방부 보고서가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유출된 후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북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구체적으로 화염과 분노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지만 군사적 옵션에 대한 강한 시사로 해석됐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화염과 분노의 대상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그의 호위정권으로 국한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로 미국령 괌 주변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최종 완성해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 보고할 것”이라며 강한 반격에 나섰다. 강대강의 위협발언이 오가던 중 북한은 지난 3일 6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지난 15일엔 괌을 사정거리에 두는 화성-12형 발사도 감행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이처럼 수차례 군사 옵션을 시사했음에도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 정권을 직격하고 있다. 다만 물리적인 행동을 포괄하는 ‘완전 파괴’는 김정은 정권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 모두를 대상으로 규정하는 단어다. WP는 “핵무기 혹은 재래식 무기를 통해 한 나라 전체를 말살시키겠다는 전례 없는 위협”이라면서 “두말할 나위 없이 백악관은 발언의 진의를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북한 비판에 사용된 단어들은 트럼프 본인이 직접 고른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표현을 다듬고, 미세조정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썼다"고 설명했고, 실제로 트럼프가 며칠 전 트위터에 썼던 '로켓맨'이란 표현도 그대로 등장했다.

트럼프의 발언 파장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난해 발언과 비교해 새로운 것이 없다면서 수위 조절에 나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6일 CBS 인터뷰에서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무기로 북한을 파괴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언은 문맥상 전혀 다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에 그만한 화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또 “(군사 공격시) 인도주의적 대가를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명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공격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은 전례없는 대북 군사 공격 위협을 의미한다”면서 이번 발언이 “타인이 예측할수 없게 하고 세계 지도자들이 두려워하게 하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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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장을 초토화시킨 이번 발언을 두고 “히틀러(같다)”(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극도로 위험한 발언”(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등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런 식으로 세계에 대해 말한 대통령은 없었다”(CNN)는 우려가 나왔다. 다만 발언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뉴욕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의 수석 연구원 스튜어트 패트릭은 BBC에 “완전 파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 않다”면서 “국방부 관계자들이 군사옵션을 검토한다면 그것이 초래할 서울의 막대한 인명 살상에 입이 딱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을 심각한 위협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북한에 사용할 수 있는 군사옵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더글라스 팔 카네기 평화연구소 부원장도 ‘완전 파괴’와 관련, "미국이 엄청난 보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트럼프식 표현"이라며 "북한의 침략행위가 없는데도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전례 없는 발언은 유엔총회에 참석한 북한 대표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았다. 자성남 주유엔 북한 대사는 공세를 예상한 듯 트럼프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연단 바로 앞좌석에서 박차고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가버렸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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