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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어피즈먼트와 유화책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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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오롯이 어감이 전달되지 않는 영어 단어가 있다. ‘어피즈먼트(appeasement)’도 하나다. 유화책이라고 번역될 터인데 우리말론 딱히 느낌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1930년대 말까지 영국인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39년 3월 나치 독일의 체코 침공이 이의 운명을 갈랐다. 히틀러와 대화·협상·타협을 한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의 외교정책이 어피즈먼트로 여겨져서다.

사실 대독(對獨) 유화 기조는 체임벌린만의 정책은 아니었다. 노동당·보수당 정권을 아울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전쟁을 혐오했고 두려워했으며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 옥스퍼드대의 한 토론클럽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는 걸 토의에 부쳤는데 275명이 찬성한 데 비해 반대한 건 153명이었다.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반전주의가 유행이 아닌, 다수가 신봉하는 신조인 시기”(폴 존슨)였다.

38년 9월 영·불이 독일 등과 체코의 핵심 지역을 독일에 넘기는 뮌헨협상을 타결했을 때 영국인 다수는 안도했다. 의회에서도 찬성 369대 반대 150으로 추인됐다. “그간 제재가 통하지 않았으니 이젠 대화할 때”란 체임벌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뮌헨 협상은) 헛된 선의의 5년, 가장 쉬운 길을 좇던 5년, 영국 권력이 계속 후퇴하도록 내버려둔 5년의 정점”이란 윈스턴 처칠의 비판은 별 반향이 없었다.

하지만 비로소 평화를 향한 선의가 전쟁을 향한 악의를 제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 영국인은 달라졌다. 오랜 시간 홀로 히틀러에게 맞섰다.

그 후 “어피즈먼트만은 안 된다”는 게 강력한 수사(修辭)가 됐다.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할 때,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본토로부터 1만3000㎞ 떨어진 포클랜드섬을 두고 아르헨티나와 싸우려 할 때 동원한 말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 인해 종종 이 단어를 듣는다. 우리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청와대의 “지금은 제재할 때”란 발표를 보곤 트럼프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일부 참모와 여당 수뇌부의 발언에 갸우뚱했다. 그러다 ‘인도적’이란 꼬리표가 달렸다지만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지원 얘기까지 나오니 트럼프를 뭐라 하기도 어렵게 됐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