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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헛날갯짓, 가을 구장서 독수리 못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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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화는 최근 10년간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감독도 4명이나 바뀌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도 18년 전 일이다. 과감한 개혁이 없다면 한화의 암흑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경기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한화 선수들. [대전=뉴스1]

한화는 최근 10년간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감독도 4명이나 바뀌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도 18년 전 일이다. 과감한 개혁이 없다면 한화의 암흑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경기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한화 선수들. [대전=뉴스1]

5-8-8-6-8-9-9-6-7-8. 지난 10년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순위다. 그들에겐 올해도 가을야구는 없었다. 한화는 10년 동안 한 번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화는 14일 대전 넥센전에서 10-2로 승리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대구 삼성전에서 5-13으로 지면서, 남은 경기에서 다 이겨도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없게 됐다. 한화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나갔던 2007년. 이로써 LG의 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실패(10시즌·2003~12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한화, 포스트시즌 진출 또 실패 #13일 삼성전 패배로 희망 날아가 #최다 연속 실패 LG와 타이 기록 #구단 주머니 열며 경기력 일시 호전 #김성근 감독 사퇴로 다시 주저앉아 #FA 결정 사령탑 없어 재기 안갯속

한화는 2015시즌을 앞두고 승부사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 아울러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권혁·배영수·송은범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그런데도 시즌 최종전에서 져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지난해에도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3경기를 남기고 탈락했다. 올해는 개막 두 달도 안 돼 김성근 감독이 자진사퇴 형태로 팀을 떠난 데 이어,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으로 빠지면서 일찌감치 순위 경쟁에서 밀려났다.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은 한화 구단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화는 투자에 인색했다. 1998년 FA 제도가 생긴 뒤 외부 영입 선수는 김민재(2005년), 송신영(2011년) 등 손에 꼽았다. 구단 자체적으로 젊은 선수를 키우지도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9년까지는 드래프트에서 다른 팀보다 적은 수를 뽑았다. 무엇보다 고졸 선수보다 즉시 전력감인 대졸 선수를 선호했다. 한화의 2군 전용 시설은 2012년에야 마련됐다. 세대교체가 잘될 리 없었다. 최근 10년간 한화가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에서 뽑은 선수 가운데 주전급으로 성장한 건 유격수 하주석(23) 정도다. 하주석도 프로 6년 차인 올해에야 빛을 봤다.

구단 운영도 갈팡질팡했다. 무엇보다 감독 선임 등에 모기업 상층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2010년 한대화, 2013년 김응용, 2015년 김성근 감독 선임 과정에서 그랬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대화 감독 시절 젊은 선수 육성에 무게를 뒀지만 자리 잡은 선수가 많지 않았다. 김응용 감독 시절엔 이용규(33)·정근우(35)를 영입하는 등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9년간 현장을 떠났던 김 감독 지도력은 과거에 비해 초라했다.

지난 5월 사퇴한 김성근 감독에 이어 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군 한화 감독 대행. [중앙포토]

지난 5월 사퇴한 김성근 감독에 이어 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군 한화 감독 대행. [중앙포토]

‘김성근 카드’도 결국 실패로 끝났다. 김 감독 재임 동안 한화의 경기력은 전보다 좋아졌다. 팀 연봉 1위에 오를 만큼 구단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하지만 선수 혹사 논란, 팀과 프런트의 마찰 등으로 김 감독 임기 내내 시끄러웠다. 올시즌 들어선 김 감독과 박종훈 단장의 갈등이 격화됐다. 결국 김 감독이 중도 퇴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설위원은 “김성근 감독이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 구단도 김 감독에게 전권을 준다고 약속했지만, 서로 좋지 않게 끝났다. 김 감독 공과(功過)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사실상 한화 구단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시즌을 접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화에선 정근우·이용규가 FA 자격을 재취득한다. 둘 다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나이가 많다. 황재균·민병헌·손아섭·강민호 등 수준급 선수들이 시장에 나온다. 외국인 선수 재계약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팀 개선 방향에 있어, 젊은 선수 ‘리빌딩’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굳이 외국인 선수를 잡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한화 고위 관계자 말처럼 “감독이 정해져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상군 감독 대행은 사실상 정식 감독 승격이 어려운 처지이다 보니, 한화 구단으로서도 이런 사안을 상의할 ‘야전사령관’이 없는 셈이다.

LG는 2011시즌 뒤 당시로선 “파격적”이라는 평가 속에 김기태 감독(현 KIA 감독)을 선임했다. ‘모래알’ 같은 팀을 하나로 만드는데 적임자로 판단했다. 이듬해 LG는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김 감독이 떠난 2015년엔 재빠르게 양상문 감독을 선임했다. 계속 해설위원을 했던 현장 감각을 높게 평가했다. LG는 후반기 대약진하면서 4위로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한화는 2012시즌 뒤 김응용 감독 선임 때까지 42일이나 사령탑 자리를 비워뒀다. 다음 시즌을 준비할 ‘골든타임’을 날렸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팀의 현재 상황부터 정확하게 평가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감독 선임과 프런트 개편도 서둘러야 한다. NC·넥센 등 좋은 성적이 나는 팀을 보면 야구 전문가들이 구단을 이끈다. 야구단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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