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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걸 보여준 아마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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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경제부 차장

박현영경제부 차장

미국 온라인 유통 기업 아마존의 ‘제2 본사 찾기’가 한창이다. 지난주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북미 대도시에 시애틀 본사와 대등한 규모의 제2 본사를 짓겠다”고 발표하자 뉴욕·보스턴 등 주요 도시들이 한껏 들떠 있다. 잘나가는 기업 아마존이 들어오면 일자리와 세수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지역 도시들로선 로또를 맞는 셈이다.

비즈니스의 달인 베저스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탁월한 전략을 보여줬다. 원하는 조건을 상세하게 정리한 8쪽짜리 제안요청서(RFP)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관심 있는 도시는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담은 제안서를 써서 지원하면 경쟁을 통해 선발된다.

희망 조건은 이렇다. 인구 100만 명을 넘고, 좋은 대학이 있어 고급 인재풀을 지니고, 사옥 부지는 가장 번화한 곳에서 48㎞ 이내, 국제공항은 45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주요 고속도로와 간선도로 진출입로는 3㎞ 이내, 기차·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은 부지로 직접 연결돼야 한다.

도시들은 혈안이 되어 후보지를 찾고 있다. 최적의 조건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쪽은 아마존인데, 반대로 돌아가니 베저스의 사업 머리는 감탄할 만하다.

베저스가 까다로운 취향을 드러내며 큰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아마존이 줄 게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제2 본사에는 향후 10~15년간 풀타임 일자리 5만 개가 새로 만들어진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평균 연봉 10만 달러(약 1억1300만원) 이상의 고급 일자리다. 모두 50억 달러(약 5조6500억원) 이상의 직접 투자가 이뤄진다.

시애틀 본사를 들여다보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존 임직원 38만 명 가운데 약 4만 명이 시애틀에서 일한다. 2010~2016년 이들에게 나간 급여가 257억 달러(약 29조원)다. 회사가 지원한 교통비는 4300만 달러(약 485억원), 아마존 방문객이 이용한 호텔 객실 수는 지난해 23만3000개다. 경제가 돌고 세수가 늘면서 시애틀은 잘사는 도시가 됐다.

한편에서는 아마존이 시애틀에서 더 이상 확장하지 않고 떠나는 이유를 놓고 시끄럽다. 최저임금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리고, 최근 부자 증세 법안이 통과되는 등 기업 친화적이지 않은 환경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진보 정치인들은 이와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점이다. 성장하는 기업은 필요에 의해 고용을 늘린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업 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재정을 동원한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는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는 아마존 같은 기업을 키울 구상은 없어 보인다.

박현영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