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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계엄군이 시신들 암매장 후 은폐" 전직 교도관 증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교도소 내 3곳에 다수의 사망자를 암매장한 뒤 은폐했다’는 전직 교도관의 증언이 나왔다.

1980년 5월 광주교도소에서 내·외곽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과 소속 교도관으로 재직했던 A씨는 13일 전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본 것과 동료 교도관들의 목격담 등을 토대로 암매장 추정 장소와 매장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무장한 광주 시민이 태극기 꽂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나경택, 창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무장한 광주 시민이 태극기 꽂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나경택, 창비]

A씨는 “계엄군이 며칠 동안 군용 트럭에 여러 구의 시신을 싣고 와 교도소 곳곳에 암매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계엄군의 암매장 추정 장소로 ▶교도소장 관사 뒤편 ▶간부 관사로 향하는 비탈길 ▶교도소 감시대 옆 공터 등 3곳을 지목했다.

A씨는 “교도소 접견실 옆 등나무 밑에 주차한 군용 트럭 안에 거적을 덮은 시신들이 있었다”며 “가마니로 만든 들것을 가져온 군인들이 시신을 창고 뒤편 화장실로 옮긴 뒤 이튿날 암매장했고, 며칠에 걸쳐 똑같은 방식으로 시신이 암매장됐다”고 말했다.

암매장 방법에 대해서도 “군인 6~7명이 야전삽을 이용해 직사각형 형태로 잔디를 걷어내고 야전삽 길이 만큼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고 잔디로 다시 덮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1995년 12월 5.18 광주 현장조사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교전 상황에 대한 실사를 벌인 뒤 광주교도소 앞에서 김상희 부장검사등 조사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5년 12월 5.18 광주 현장조사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교전 상황에 대한 실사를 벌인 뒤 광주교도소 앞에서 김상희 부장검사등 조사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구덩이를 파면서 나온 흙은 판초 우의에 차근차근 쌓아놓고 남은 흙은 인근 논에 뿌리거나 먼 곳에 버리는 방식으로 시신을 묻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 파낸 흙을 모두 치우고 잔디가 뿌리를 다시 내리면 암매장 장소는 구분하기 어렵다.

A씨가 암매장 추정 장소로 꼽은 교도소장 관사 뒤편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인이었던 고영태씨의 아버지 고(故) 고규석씨 등 8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담양에 거주하던 고씨는 5월21일 광주에서 차량으로 교도소 인근 도로를 지나다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으며 5월30일 교도소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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