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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디데이는 9월9일? 크리스마스? 유언비어에 휘청대는 일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를 인용 보도한 후지TV의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 방송 화면. 지난 6일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8월 15일 전화통화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북한이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공습할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를 인용 보도한 후지TV의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 방송 화면. 지난 6일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8월 15일 전화통화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북한이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공습할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아침 후지 TV 보도에서 8월 15일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 내용 일부가 나왔는데….”
6일 오전 일본 총리관저에 열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정례 브리핑에서 한 일본 신문 기자가 조금 전 민방(민영방송) 뉴스쇼에서 다룬 아이템을 거론했다. 이날 아침 지상파 후지TV는 지난달 15일 미·일 정상이 전화 통화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일본 주간지 보도를 인용해 소개했다.  그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북한 위기속 정체불명의 "아베-트럼프 녹취록'쏟아지고 #"아베가 정치적 생명 걸고 북한 갈 것" 소문까지 횡행 #트럼프 생각 베일에 쌓이자 각종 유언비어와 추측 난무 #"주간지 보도 맞는 경우도 있어 완전 무시도 어려워"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를 인용 보도한 후지TV의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 홈페이지. [사진 도쿠다네 홈페이지 캡처]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를 인용 보도한 후지TV의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 홈페이지. [사진 도쿠다네 홈페이지 캡처]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진 아베 총리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전쟁은 절대 안 된다. 일본에 미칠 피해가 너무 크다"고 했고, 이에 트럼프는 "(전쟁이 아니라)김정은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 매티스(국방장관)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아직은 전쟁준비가 안 됐다’고 하니 일단 그 조언에 따르려고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베 총리가 “미국이 대북공습을 단념한 걸 환영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핵무기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든 하나는 꼭 포기시키겠다. 그게 싫다고 하면 더는 참지 않고 북한을 때리겠다. 그때쯤이면 북한에 대한 공격 준비가 돼 있을 테니"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주간지의 보도엔 "김정은이 이미 '미국의 크리스마스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경고한 만큼 교섭이냐, 폭격이냐를 결정하는 트럼프-김정은 협상의 데드라인은 이번 크리스마스"란 내용도 포함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 군사 도발을 할 때마다 곧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 군사 도발을 할 때마다 곧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후지TV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들 사이엔 "보도된 트럼프의 말처럼 비밀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 통로는 북미 간 뉴욕 채널이 유력하다”는 말이 오갔다. 사회자가 "두 나라 정상이 전화 통화에서 나눈 대화가 이렇게 새 나갈 수가 있겠느냐"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이 방송은 전파를 타고 사실인 양 일본 국민에게 전달됐다.

 주간지의 보도 내용이 관방장관의 총리관저 정례 브리핑에서 언급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베 총리의 오른팔인 스가 관방장관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런 이야기가, 정상간의 전화회담이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다. 정부 입장을 말할 수 있는 (성격의) 내용이 아니다”고만 했다.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 슈칸겐다이의 담당자가 후지TV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에 출연해"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8월 15일 전화통화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북한이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공습할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주간지 슈칸겐다이의 담당자가 후지TV 정보프로그램 '도쿠다네'에 출연해"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8월 15일 전화통화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북한이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공습할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북한 핵ㆍ미사일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음에도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본 사회엔 루머와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전파되고 있다.
트럼프의 속 마음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화에 있는 것인지, 이번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트럼프의 절친'으로 떠오른 아베 총리와의 잦은 전화통화에서 과연 그가 무슨 말을 쏟아내고 있는 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여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7월31일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건국기념일인 9월9일에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주간지 보도까지 나왔다. 트럼프가 아베에게 예정된 대북 공습일을 슬쩍 알려줬다는 거다. 트럼프가 “지난 4월에 시리아를 때렸던 것처럼 북한에 한방 때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고, 이에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스케줄이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가 다시 “그 놈(북한)들의 건국기념일이 9월 9일 아니냐. 간부들이 모여서 기념식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보도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이때만해도 메이저 언론은 이를 취급하지 않았다.

9월 9일에 미국이 북한을 공습할 것이라고 보도한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 [사진 슈칸겐다이 캡처]

9월 9일에 미국이 북한을 공습할 것이라고 보도한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 [사진 슈칸겐다이 캡처]

그런가하면 앞서 7월말~8월초엔 '아베 총리의 전격 방북설'이 일본 사회를 강타했다. 아베 총리를 독대한 한 원로 언론인이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을 아베에게 제안했다”고 밝히면서 소문이 시작됐다. ‘각종 스캔들로 지지율이 추락한 아베 총리가 북한 김정은과의 담판을 통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의 일괄타결을 시도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지상파 방송들이 앞다퉈 주요 이슈로 다뤘고, 아베 총리 본인이 사실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확실한 언급을 피하는 바람에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아베로선 그런 소문이 퍼져도 나쁠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언론 풍토에 정통한 전문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식었고, 대신 북한 이슈가 부각되면서 김정은이 주간지나 인터넷 뉴스의 주된 타깃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주간지의 경우 메이저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총리관저나 의회 주변의 검증되지 않은 얘기들을 보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며 “정치인들의 신변에 관련된 뉴스나 불륜관련 보도의 경우 결과적으로 맞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아베 총리의 안보 리더십을 부각해 정치적 위기 탈출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정권의 의도까지 맞물리면서 일본 내부가 각종 설에 휘청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일본 정치권뿐만 아니라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한 지난달 29일엔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SNS엔 “북한 미사일을 직접 봤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미사일 동영상까지 등장했다. 방위성이 “비행 경로로 볼때 지상에서 육안으로 미사일을 봤을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낸 뒤에야 관련 글과 동영상이 삭제됐다.
서승욱·김상진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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