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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고시친구 청와대 '집사'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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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청와대 안살림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에 친구인 정상문(鄭相文.57)서울시 감사담당관(4급.과장)을 기용키로 해 화제다. 鄭씨는 盧대통령과 동향(경남 김해)인 데다 약 2년간 고시 공부를 함께 했던 사이다. 盧대통령과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盧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鄭과장을 찾기 위해 서울시로 직접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당시 "鄭과장 좀 바꿔달라"는 盧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서울시 공무원은 두번 놀랐다고 한다.

누가 전화한지 모르고 "누구시냐"고 물은 이 공무원은 "盧당선자입니다"라는 말이 수화기에서 나와 한번 놀랐고, 전화를 건네받은 鄭씨가 "어, 무현이가"라고 해 또 한번 놀랐다는 것이다.

서울시 4급 공무원이 대통령당선자의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전화하는 것을 목격한 서울시 동료들은 "당시 까무러칠 뻔했다"고 지금도 말한다. 鄭씨가 盧대통령을 안다는 것은 짐작했으나 그렇게 가까운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鄭씨가 맡기로 한 총무비서관직은 盧대통령의 집사로 불려온 최도술(崔導述)씨가 맡았다가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나면서 공석이 됐다. 鄭씨는 청와대 부산 인맥으로 분류되는 문재인 민정수석.이호철 민정1비서관 등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 鄭씨도 범(汎)부산파로 분류된다. 盧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자리에 다시 부산 인맥이 등용되는 셈이다.

鄭씨는 盧대통령과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 그는 정규 학교로는 김해 가락중까지만 다녔다. 그 뒤 검정고시를 거쳐 고시에 도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7급 지방공무원 시험으로 목표를 돌려 합격했다.

盧대통령은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에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도 책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독서대를 발명, 특허를 냈을 때 함께 사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鄭씨는 경남도청을 시작으로 25년 남짓 근무했으며, 자력으로 서울시 핵심 요직 중 하나인 감사담당관직에 올랐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졌다.

鄭씨가 감사담당관으로 승진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이때 한직인 서울시 체육청소년과의 민원조사담당관을 떠돌던 鄭씨를 발탁하게 한 것은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盧대통령의 후광이 아니었다.

바로 한나라당 출신인 이명박(李明博)서울시장의 선택이었다. 李시장이 당선 후 첫 인사에서 鄭씨를 요직으로 앉힌 것은 직원들의 내부 평가 때문이었다고 시 관계자들은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鄭씨는 성실성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라며 "盧대통령의 친구임에도 잡음이 전혀 없었고 능력이 뛰어났다"고 그를 평했다.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는 4급으로 승진한 지 1년도 채 안된 鄭씨를 총무비서관으로 쓸 경우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고 한다. 총무비서관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 청와대 내부의 인사와 예산을 좌우하는 수석비서관 자리였고, 김대중 정부에서 비서관으로 격하됐지만 비중은 수석급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鄭씨를 3급으로 승진시켜 맡기는 방안에 대해 자체 검토에서 반론도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때 鄭씨를 민정수석실 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케 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양길승(梁吉承)전 제1부속실장이 구설에 휘말린 점을 감안해 감사담당관 출신이 총무비서관 자리에 오는 게 적합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한다.

앞으로 鄭씨는 청와대 기강을 잡는 '군기반장'의 역할까지 수행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25년간의 공직 경험으로 관가 사정에 정통한 그는 盧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철호.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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