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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없는 거인 급부상 … ‘헬스볼’이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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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건재한 롯데는 최근 4위로 약진했다. 롯데 이대호(가운데)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건재한 롯데는 최근 4위로 약진했다. 롯데 이대호(가운데)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는 부상자가 거의 없다. 시즌 초반 중견수 전준우와 2루수 앤디 번즈가 옆구리 부상, 유격수 문규현이 손가락 부상으로 한 달 가량 결장한 것이 전부다.

선수 몸관리에 희비 갈린 프로야구 #트레이닝 시스템 잘 갖춘 롯데 #주전들 몸 상태 좋아 막판 기세 #LG, 핵심 선수 잇단 부상에 추락 #‘환자 부대’ 한화 하위권 못 벗어나 #MLB는 부상자 구단 손실로 여겨 #생체 데이터 수집해 관리에 활용

시즌 초부터 완주한 선수들도 8월 이후 컨디션이 절정에 올랐다. 8월을 19승8패로 마친 롯데는 3위 NC를 2경기, 2위 두산을 4경기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마무리 투수 손승락은 후반기(7월 17일 이후)에만 22경기에 나와 16세이브를 올렸다. 손승락은 “지난해 롯데에 온 뒤 트레이닝 부서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잘하다가도 시즌 중반 슬럼프가 있었다. 올해는 체계적으로 몸을 관리한 덕분에 중간에 쳐지지 않고 시즌 내내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롯데와의 경기 도중 수비를 하다 김재환과 부딪혀 어깨를 다친 김재호(위).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롯데와의 경기 도중 수비를 하다 김재환과 부딪혀 어깨를 다친 김재호(위). [연합뉴스]

순위 싸움이 한창인 시즌 막판, 부상 관리를 잘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명암이 갈리고 있다. 롯데와 함께 후반기를 주도하고 있는 두산 역시 양의지(포수)·민병헌(외야수) 등 부상자가 복귀한 7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두산은 시즌 초반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했지만 이들이 돌아온 뒤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반면 7위 LG는 주전급들의 잇단 부상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에이스 허프는 시즌 중 2차례나 부상으로 빠졌다. 올해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합류했던 마무리 투수 임정우는 어깨 통증으로 대회를 목전에 두고 대표팀에서 빠졌다. 긴 재활 끝에 지난달 11일에야 복귀했지만 지난해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LG는 중요한 시기에 유격수 오지환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5위 추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화는 팀의 기둥인 김태균을 비롯해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중앙포토]

한화는 팀의 기둥인 김태균을 비롯해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중앙포토]

8위 한화는 그야말로 ‘부상 병동’이다. 김태균·정근우·이태양 등 주전 선수들이 대거 빠진 상태에서 ‘1.5군 라인업’으로 시즌 막판을 보내고 있다.

야구선수들은 항상 부상에 노출돼 있다. 팔과 어깨로 공을 던지는 투수는 물론이고 야수들도 주루 플레이 과정에서 인대나 근육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골절상을 당할 수도 한다.

물론 선수의 의지와 상관없는, 피할 수 없는 부상이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부상을 미리 막을 수도 있다. 최근 프로야구 각 구단들은 부상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부상은 곧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구단마다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돕는 트레이닝(컨디셔닝) 부서가 있다. 트레이너는 대부분 정식 코치다. 넥센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1군 코치 엔트리(8명)에 등록됐다. 한화에는 8명의 트레이닝 코치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인 이상훈 CM병원 원장은 “과거에도 각 팀에 트레이너가 있었지만 선수의 상태를 감독이나 코치에게 보고하는 역할에 그쳤다. 선수 기용에 대한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감독들이 트레이너의 판단을 존중하는 추세다. 또 부상 방지를 위한 체력을 강화하고 컨디션을 조절 하는 역할을 트레이너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의 부상을 구단의 손실로 여긴다. 2015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시즌 동안 투수의 부상 때문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손해 본 금액이 11억달러(약 1조2400억원)나 된다. 연간 2000억원 규모다. 그렇기 때문에 부상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생물학적 피로도를 수치화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경기 중 생체인식 기기 사용을 일부 허용했다.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는 딥러닝 분석을 통해 선수 관리에 활용한다.

2014년 미국 야구연구협회(SABR)는 “5~10년 안에 야구 통계 데이터가 선수 스카우트는 물론 선수들의 건강 관리와 부상 방지에 활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빌리 빈 오클랜드 사장은 ‘머니볼’ 을 넘어 이후에는 ‘헬스볼’ 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한 매체는 이를 세이버 메트릭스(야구 통계학)와 메디컬(의학)의 합성어인 ‘세이버 메디컬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부상 관리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부상 데이터를 공개하는데는 적극적이지 않다. 최신 측정 장비 도입을 위한 투자에도 인색한 편이다. 이 원장은 "축구에서는 이미 선수들의 직접 움직임을 분석해 부상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야구에서는 선수들의 구질, 구속, 릴리스 포인트 높이 등 간접 움직임으로 부상 가능성을 추정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올해 야구 선수의 동작분석 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 선수 부상방지와 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비다.

특히 젊은 투수들의 부상 방지는 KBO리그의 각 팀의 공통된 관심사다. 현재 국내 아마추어 야구에선 투수들이 혹사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입단과 동시에 팔꿈치나 어깨 수술을 받는 투수들이 상당수다. 이 원장은 “프로 입단 후 부상을 당하는 것보다 중·고교 시절 축적된 피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중·고교 야구 선수들의 부상 관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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