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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이 北 더 방치하면 중무장한 일본 등장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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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04면

北, 일본 열도 넘어 미사일 … 복잡해진 동북아 지형 

중앙포토, [연합뉴스]

중앙포토,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끝난 한·미 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시작(21일)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긴장이 고조됐다. 이른바 ‘8월 위기설’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말 폭탄’ 싸움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 김정은이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15일)는 유화 제스처로 꼬리를 내리자 이에 트럼프가 이튿날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화답하면서 긴장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했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 안 잠그고 #미국은 선제공격 못할 걸로 판단 #김정은 자신감 바탕 일본 건드려 #북 도발 후 일본 재무장론 고개 #아베 지지율 북풍 타고 상승기류 #북·일 수교 논의 여건 되면 재개

하지만 UFG 연습 기간인 지난달 29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에 휩싸였다. 북한은 이날 일본 홋카이도 동쪽 해상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발사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일제의 강제 한·일병탄으로 한국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1910년 8월 29일)이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전체 장병들은 107년 전 한·일합병이라는 치욕적인 조약이 공포된 피의 8월 29일에 잔악한 일본 섬나라 족속들이 기절초풍할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고 선전했다. 북한이 화성-12형의 방향을 일본으로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합리화하려고 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여전히 한·일합병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북 ‘고위험 고수익’ 노리고 다자 게임화

김정은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를 다자간 게임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초강대국 미·중과 흥정하고 때로는 그들을 위협하고 급기야 북핵 문제로 싸움까지 붙이고 있다. 약소국으로서는 가당찮은 일이지만 어느새 현실이 돼 버렸다. 동북아 체스게임판은 더욱 복잡한 방정식으로 변해 가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혈맹이라고 하는 중국과도 불편한 관계를 불사하면서 그들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5월 24일 “북한 양강도 당 위원회 회의실에서 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이 도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화성-12형은 중국 전역을 확실하게 타격할 수 있는 핵 운반수단’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속내를 흘린 것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북한사회 변동과 주민의식 변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국가로 미국(76%), 중국(15%), 일본(5.3%)을 순서대로 꼽았다. 이 조사는 탈북민 13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고위 간부도 “조선(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것은 오직 미국만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이 중국도 내심 자신들의 잠재적 위협국으로 인식하고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북한의 ‘방중정책(防中政策·중국을 방어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주체사상의 주요 요소가 됐다. 류싱(劉星) 중국정법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북한은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전략적 환경이 악화돼도 중국이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오래전부터 북한을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 예로 그는 6·25전쟁을 외국 언론이 전하는 뉴스를 통해 알았다. 김일성은 전쟁 직전인 50년 5월 베이징을 방문해 남침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은 전쟁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 미군과 일본군의 참전 가능성 등을 토의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평양으로 돌아간 뒤 전쟁을 언제 시작할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나 군사정보를 중국에 알리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야 알게 된 마오쩌둥은 김일성을 괘씸하게 여겨 의자를 집어던진 일화가 있다.

김정은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북한 정권의 유지가 중국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큰 목표라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 뿌리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있다. 그는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후계자인 장쩌민(江澤民)에게 “정권 안정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말을 누차 전했다. 이를 안 김정일이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덩샤오핑의 말을 자주 인용해 ‘장사’를 잘했다. 따라서 김정은은 북한이 민주화돼 한국과 함께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것보다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중국이 더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류 교수는 “중국이 향후에도 북한의 반복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을 계속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의 경험에 비춰 북한 정권 안정을 선호하는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잠그지 않을 것과 미국이 중국·러시아 때문에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면서 그는 집권 5년 동안 자신감을 더 키운 것처럼 보인다.

김정은은 이런 자신감을 깔고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건드렸다. 당연히 아베 총리의 반발은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우리 상공을 통과하는 북한 미사일 발사 폭거는 전례가 없는 심각하고 중대한 위협”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전화통화를 했다. 두 사람은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열어 북한에 대한 압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일본 재무장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내부보다 미국 언론들이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 ‘도쿄를 넘어가는 핵 미사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방치하면 일본이 핵무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일본 지도자들이 일본의 자체 핵무장을 오랫동안 거부해 왔으나 위기가 왔을 때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도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일본의 재무장을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일본 국민의 4분의 3가량은 북한이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일본이 선제타격을 하거나 반격을 가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역할론을 제기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위협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때 중무장한 일본의 등장은 중국이 치러야 할 대가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아베 회생이 유리하다고 판단

일본의 재무장을 이전부터 부채질한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핵무장을 원한다면 그들은 나와 상의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밝혔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지난 3월 아시아 지역 순방길에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지율이 떨어지는 아베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지난 4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로 떨어졌던 아베의 지지율은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을 적극 활용하면서 상승세를 탔다. 교도통신이 지난 4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6.3%포인트 상승한 58.7%였다.

하지만 지지율은 또 다른 학원 스캔들인 가케학원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난 7월 20%대로 곤두박질했다. 아베는 지난 8월 초 지지율 하락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개각을 단행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29일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아베 지지율이 46%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도발도 지난 4월처럼 ‘북풍’을 타고 아베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는 북·일 관계에서 지금의 대북강경책을 바꿀 리 없다. 그러나 91년 탈냉전과 2002년 남북 화해 무드에 편승해 평양을 방문한 가네마루 신(金丸信)-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라인으로 이어지는 북·일 수교 노력을 계승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가네마루는 91년 방북해 김일성과 ‘조속한 국교 수립’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고, 고이즈미는 2002년 평양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 정상화 조기 실현을 약속했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이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한 두 달 뒤인 2013년 5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자문역)를 특사로 평양에 보냈다. 이지마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총리 비서관으로서 아베 당시 관방 부장관과 함께 평양에 갔던 인물이다.

일본은 2014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일 수교의 최대 걸림돌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합의를 이루었다. 이런 노력들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로 중단됐지만 여건만 조성되면 언제든지 재개할 여지를 남겨 두었다. 따라서 김정은은 새로운 지도자보다 아베 총리가 살아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복잡한 한반도의 다자간 게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유로운 편이다. 북·러 관계가 북·중 관계보다 괜찮은 데다 한국의 러시아 ‘구애’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꽉 막힌 북핵 문제를 러시아를 통한 우회전략으로 뚫어보려고 하고 있다.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한·러 정상회담이 그 단초가 될 것이다. 김석환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한·러 양자만 생각하면 한·미 등 또 다른 양자가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에 우회전략이 성공하려면 동북아의 확대적인 이익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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