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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을 추모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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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이 위치한 경기 수원시 매탄동은 1973년만 해도 붉은 흙이 드러난 허허벌판이었다. 벌판 한가운데 삼성전자 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층 건물 대여섯 개가 전부였다.

19일 별세한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당시 사장)은 일요일 오후에도 당연하다는 듯 회사를 나갔다. 가끔 “바람이나 쐬자”며 부인과 조카를 데리고 갔다. “회사가 내려다보이는 청명산 기슭에 우리를 내려주고 가셨거든요. ‘5시에 오겠다’고 하시고선요. 한 번도 그 시간을 지키신 적이 없으셨어요. 캄캄해지고서야 헐레벌떡 오시고선 ‘일하다 보니 같이 온 걸 까먹었다’고 미안해하셨죠.” 조카 임영자(62)씨의 회상이다.

강 전 회장의 운구행렬은 23일 매탄동의 사업장에 들어섰다. 44년 사이 슬레이트 건물은 170만㎡ 부지에 160동의 고층 건물이 들어선 대단위 사업장으로 바뀌었다. 운구차는 천천히 사업장을 돌았고, 임직원 1000여 명이 길가에 서서 강 전 회장을 배웅했다. 삼성전자 200조 매출 신화의 기틀을 닦은 1세대 전문경영인, 삼성의 전자·반도체 사업을 일군 개척자에 대한 예우였다.

강진구 전 회장은 ‘무에서 유를 일군’ 경제 성장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동양방송(TBC) 시절엔 직접 중고 부품을 사다 방송 기자재를 조립했다. 사업을 접을지 말지 고민하던 삼성전자에 부임해선 1년 만에 적자 회사를 흑자로 전환했다. 아무도 반도체를 거들떠보지 않던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으로 부임해 한국 최초의 메모리 반도체(64K D램)를 만들어냈다.

“반도체통신 사장으로 가실 때 다들 좌천됐다고 생각했대요. 임원 80명이던 삼성전자에서 임원 3명인 반도체통신으로 가셨으니. 이모부는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 책임이 명확하니 훨씬 일하기가 좋다’며 웃으셨지요.” 임씨는 “전자공학도인 이모부는 기술적으로도 해박하셨지만, 낙관주의와 성실성이 가장 큰 무기셨다”며 “나라와 회사를 일으키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가득찬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강 전 회장의 부고 기사를 쓰려 취재하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삼성의 역사’이자 ‘한국 반도체의 역사’인 강 전 회장을 왜 더 빨리, 더 깊이 취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 때문이다. 불모지에서 한국 산업을 일으킨 원로 경영인들의 경험은 그 자체가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지혜와 조언을 사회 전체가 더 적극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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