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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만 입고 소화기 든 50대…김기용·함인옥 부부 화마 현장서 일가족 5명 구조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충북 단양군 적성면 주택 화재현장에서 80대 노인 등 이웃 5명을 구한 김기용·함인옥 씨 부부. [사진 단양소방서]

지난 17일 충북 단양군 적성면 주택 화재현장에서 80대 노인 등 이웃 5명을 구한 김기용·함인옥 씨 부부. [사진 단양소방서]

“불길을 보자마자 소화기를 들고 무작정 뛰었습니다. 소중한 이웃의 생명을 구해 천만다행입니다.”

이웃집 화재 발견 후 소화기 들고 뛰쳐나가 초기진압 #거동불편한 80대 노인 등 밖으로 대피시켜 모두 구조

긴박한 화재 현장에서 이웃에 사는 80대 노인 등 일가족 5명을 구한 용감한 부부가 감동을 주고 있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에 사는 김기용(55)·함인옥(46·여)씨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17일 오전 1시26분쯤 이웃집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안모(83)씨 등 일가족 5명을 밖으로 대피시켜 목숨을 구했다.

지난 17일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한 주택 창고에서 불이 난 가운데 김기용씨가 일가족 5명을 구조했다. [사진 단양소방서]

지난 17일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한 주택 창고에서 불이 난 가운데 김기용씨가 일가족 5명을 구조했다. [사진 단양소방서]

불이 난 주택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김씨는 당시 현관에 묶어둔 애완견 짖는 소리에 잠이 깼다. 김씨는 “개가 짖는 방향을 보니 ‘탁탁’ 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며 “큰불이 난 것을 직감하고 팬티 바람에 소화기를 들고 뛰어가 초기 진화를 했다”고 말했다. 아내 함씨는 119에 신고해 구조를 요청했다.

김씨가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창고가 불에 타고 있었다. 아내 함씨가 소화기 핀을 뽑고 김씨는 불이 번지지 않게 소화기 3대를 번갈아 가면 화재 진압에 나섰다. 안씨의 부인 이모(76·여)씨는 당황한 나머지 불을 끌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당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어디데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직 방 안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창문 쪽으로 오라고 손짓한 뒤 어깨와 목덜미를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한 주택에서 난 불로 창고가 전소됐다. [사진 단양소방서]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한 주택에서 난 불로 창고가 전소됐다. [사진 단양소방서]

김씨 부부는 안씨에게서 딸(46)과 손주 2명이 안방에서 자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황급히 안방 창문을 막고 있던 목재와 농기구를 걷어냈다. 창문을 통해 구조된 나머지 가족 3명도 김씨가 대피로를 확보한 덕분에 안전한 곳으로 탈출했다.

불은 1시간30분이 지난 이날 오전 3시쯤 꺼졌다. 이 불은 건조기와 고추, 마늘을 보관중이던 창고를 태워 소방서 추산 1500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김씨 부부의 발빠른 대처로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기용씨는 “안씨가 주택 지붕 방수공사를 하면서 가연성 소재인 에폭시로 마감칠을 했다는 말이 생각나 재빠르게 불을 끄러갔다”며 “창고에 난 불이 주택 내부로 번졌다면 큰 인명 피해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현장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기용씨와 지난 17일 화재발생을 알렸던 애완견. [사진 김기용씨]

건설현장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기용씨와 지난 17일 화재발생을 알렸던 애완견. [사진 김기용씨]

단양소방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초기 진화와 인명 구조에 나선 김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했다. 공사현장 경비원 일을 하는 김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화재를 대비한 훈련을 한 덕분에 적극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양=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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