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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만 칠하고 4시에 온댔는데”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유족 오열…근로자 4명 사망, 사고원인 조사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전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폭발사고로 협력업체 근로자 4명이 숨졌다. 사진은 탱크로 진입하고 있는 소방 구조대 모습. [사진 창원소방본부]

20일 오전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폭발사고로 협력업체 근로자 4명이 숨졌다. 사진은 탱크로 진입하고 있는 소방 구조대 모습. [사진 창원소방본부]

“나랑 같이 (친정 행사에) 갔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아이고, 아이고.”
20일 오전 경남 창원 STX조선해양 폭발사고로 숨진 임모(53)씨의 부인 전모(47)씨는 창원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목놓아 울었다. 이날은 전씨 남동생의 49재 첫 제삿날이었다. 전씨는 “남편이 일해야 한다고 해 49재에 같이 가자고 하지 못했다”며 애통해했다.

20일 오전 11시 37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 치솟아 #선박 지하 탱크 안에서 도색작업 하던 협력업체 직원 4명 사망 #STX 관계자 “주변 100m 안에 화기작업 없었다” #협력업체 직원 “화기작업 없었다면 전기누전 추측” #창원해경·소방당국 정확한 폭발 원인 조사중 #유족 “사고 4시간 지나도 회사 측 연락 없다” 주장도 #

삼 남매의 아버지인 임씨는 도장업만 20년 넘게 했다. 창원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일한 지는 2년이 좀 넘었다. 전씨는 남편의 시신을 보고 난 뒤 “탱크 바닥만 칠하고 4시쯤 집(통영)에 퇴근할 거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나”라며 장례식장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임씨의 또 다른 유족은 “오후 4시까지도 STX조선해양과 협력업체가 유족에게 사고 사실을 연락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또 다른 사망자인 김모(52)씨의 형(58)은 “동생 집이 경남 양산이라 평소에는 STX 작업장 근처 숙소에서 지내고 집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만 들어갔다. 앞으로 조카들 먹고살 일이 걱정”이라고 울먹였다. 사망자 김씨와 가족처럼 지냈다는 한 동료는 “숨진 김씨와 또 다른 동료와 함께 팀을 이뤄 모레 다른 대기업에 일하러 가기로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가슴을 쳤다.

이들을 사지로 몰고 간 폭발사고는 20일 오전 11시 37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석유제품 운반선에서 발생했다. 임씨와 김씨 외에 사고로 엄모씨(45)와 박모씨(33) 등 STX조선해양의 협력업체 K 기업의 근로자 4명이 숨졌다.

폭발사고가 난 선박. 그리스 선박회사에 10월 인도 예정인 7만4000t급 화물운반선이다. [사진 경남경찰청]

폭발사고가 난 선박. 그리스 선박회사에 10월 인도 예정인 7만4000t급 화물운반선이다. [사진 경남경찰청]

창원 해경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선박 지하 3층에 있는 깊이 12m, 면적 16.5㎡의 RO탱크(Residual Oil, 잔여 기름 탱크) 안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탱크 안에서 숨졌다. 오전 11시 37분 신고를 받고 9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낮 12시 7분 탱크 내부로 진입해 시신 4구를 확인하고, 오후 1시 30분쯤 시신을 모두 밖으로 옮겨 창원 시내 한 병원에 이송했다.

사고 당시 탱크 주변에선 8명이 작업하고 있었지만 탱크 안에서만 폭발이 일어나 내부 작업자 4명은 숨졌지만 외부의 작업자 4명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한 현장 목격자는 “갑자기 ‘펑’하는 폭발음이 들리면서 배에서 연기가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STX조선해양에 따르면 사고 선박은 그리스 선박회사에 10월 인도될 7만4000t급 석유제품 운반선이다. 현재 공정은 90%다. 건조중인 선박에는 탱크 15개가 있는데, 그 중 1개인 남은 기름을 보관하는 탱크에서 일어났다.

이 탱크의 위쪽(갑판쪽)에서는 외부 공기를 불어넣고, 탱크 아래쪽에서는 내부 공기를 빼내는 환풍구가 있다. 또 작업을 위해 탱크 내부에 조명등(광폭등) 4개가 설치돼 있었으나 사고 직후 1개의 조명등이 깨져 있는 사실을 해경이 확인했다.

작업자들은 이날 오전 8시쯤 부터 작업에 들어가 오전 작업을 마무리할 단계에 있었다. 회사 측은 “사고 당시 주위 100m 안에서 용접 같은 화기작업을 하지 않았고 ,작업관리자가 작업 전에 팬이나 작업조건·습도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영민 STX조선해양 안전품질담당 부장은 “페인트에서 나오는 시너성분 같은 유증기가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 유증기가 찼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김 부장은 조명등 1개가 깨진 것과 관련, “조명등이 깨지면서 폭발했을 수 있고, 폭발 뒤 조명등이 깨졌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협력업체인 K기업 관계자는 “환풍구가 가동되지 않으면 질식하기 때문에 사고 당시 환풍구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화기가 없었다면 전기 누전이 원인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사고를 조사 중인 창원 해양경찰은 탱크 내 조명등 1개가 깨진 것이 폭발과 관계 있는지, 내부 공기를 빼내는 환풍구가 고장나 탱크 내에 유증기가 찼는지 등 폭발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또 오는 10월 그리스의 발주사에 선박 인도를 앞두고 STX 측이 무리하게 작업 지시를 했는지를 확인 중이다. 해경은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현장감식을 벌이기로 했다.

STX조선해양 관계자가 폭발사고가 난 선박이 정박된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창원=송봉근 기자

STX조선해양 관계자가 폭발사고가 난 선박이 정박된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창원=송봉근 기자

한편 이날 오후 5시30분쯤 사고 현장을 찾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탱크 위쪽에서 환풍구가 가동되는 것을 보고 “왜 현장을 사고 당시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환풍시설을 돌리고 있느냐”며 회사관계자를 질책했다. 이에 회사 측이 “내일 국과수 조사 때 가스가 있으면 못들어갈 것 같아 가동 중”이라고 답하자 김 장관은 “당장 멈추라”며 “앞으로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반드시 원청에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화학물질 등을 다루는 위험한 일은 원청에서 하도록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창원=황선윤·최은경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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