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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영 대형마트는 밀집사육 계란 100% 퇴출시킨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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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좁은 닭장 안에 산란계를 가둬 키우는 '케이지사육'이 살충제 계란,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케이지 계란'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케이지사육 방식은 그간 저비용 대량생산 방식으로 각광 받았으나, 식품 품질과 동물 복지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최근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월마트ㆍ테스코 "2025년까지 케이지 계란 판매 완전 중단" #계란 품질, 동물 복지에 대한 요구 커지면서 전격 수용 #넓은 헛간, 야외 방목, 유기농 계란이 자리 채울 것 #"대형마트가 나서면 비싼 유기농 계란 값도 떨어질 것"

케이지에서 키우지 않은 닭에서 얻은 계란을 ‘케이지 프리(cage-free)’ 계란이라고 부른다. 케이지 프리 움직임은 세계 주요 유통업체가 이끌고 있다. 미국 월마트와 영국 테스코는 지난해 나란히 “2025년까지 매장에서 '케이지 계란'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마트는 세계 유통업계 1위, 테스코는 3위 업체다.

최근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나면서 두 유통업체의 공개 선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테스코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케이지 계란 퇴출 범위를 폴란드ㆍ헝가리ㆍ슬로바키아ㆍ체코 등 동유럽 5개국 매장으로 확대하겠다 “고 발표했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 이 계란은 닭장에서 밀집사육 방식으로 수확했다. [사진 초이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 이 계란은 닭장에서 밀집사육 방식으로 수확했다. [사진 초이스]

대형 유통업체 가운데는 월마트가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해 4월 월마트는 “월마트와 샘스클럽은 2025년까지 미국 내 모든 매장에서 판매하는 계란을 100% 케이지 프리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캐슬린 맥러플린 월마트 최고지속가능책임자는 “식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투명성을 기대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케이지 프리 계란만을 취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테스코가 뒤를 이었다. 테스코는 지난해 7월 “계란 농가, 협력업체, 업계 전문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테스코의 계란 구매 전략을 검토한 결과 2025년까지 매장 내 모든 계란을 케이지 프리로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매트 시미스터 테스코 신선식품 디렉터는 “케이지 계란 퇴출은 지속가능한 구매와 동물 복지 개선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테스코는 영국에서 연간 14억 개의 계란을 판매했다. 이 가운데 43%가 케이지 계란이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놓아 기르긴 했지만 밀도는 높다. "배낭여행자 숙소보다 못하다"는 설명이 위트있다. [사진 초이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놓아 기르긴 했지만 밀도는 높다. "배낭여행자 숙소보다 못하다"는 설명이 위트있다. [사진 초이스]

영국 가디언은 “케이지 계란이 빠져나간 판매대는 헛간(barn)에서, 또는 프리레인지(free-range), 유기농법으로 기른 계란이 채우게 된다”고 전했다. 헛간 사육은 넓은 실내 공간에서 닭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면서 알을 낳는 방식이다. 횃대를 설치해 날개짓 등 닭이 하는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 쇠창살이 없고, 땅을 밟으며 자랄 수 있다는 점이 자연친화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프리레인지(개방사육)는 개방된 공간에서 닭을 놓아 기르는 방식이다. 닭이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활동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놓아 기른 닭에서 수확했다. 밀집도는1헥타르 당 800마리다. '진정한 프리레인지 계란' '닭 세게의 힐튼호텔'이란 표현이 재미있다. [사진 초이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놓아 기른 닭에서 수확했다. 밀집도는1헥타르 당 800마리다. '진정한 프리레인지 계란' '닭 세게의 힐튼호텔'이란 표현이 재미있다. [사진 초이스]

유럽연합(EU)은 2012년 1월부터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다. 배터리 케이지는 배터리처럼 일렬로, 나란히 빽빽하게 구성된 닭장을 말한다. EU ‘개선된 케이지(enriched cage) ’ 사용은 허용하고 있는데, 배터리 케이지보다는 넓어졌지만 여전히 밀집사육이라고 볼 수 있다. 제곱미터당 닭 13마리가 최소 기준이다.

월마트와 테스코는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축에 속한다. 영국에서는 유통업체 세인스버리, 웨이트로즈, 막스앤스펜서 등이 이미 매장에서 케이지 계란을 판매하지 않거나, 일정에 따라 수량을 줄여가고 있다. 미국에서도 유통업체 크로거ㆍ코스트코 등이 케이지 프리 계란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실행중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대형마트가 케이지프리 계란 퇴출에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케이지에서 기르지는 않았지만 놓아 기른(free-range)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설이다. '날갯짓을 겨우 할 정도의 공간'이라고 써 있다.[사진 초이스]

어떤 방식으로 자란 닭에서 얻은 계란인지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앱. 계란 포장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사육 방식이 나타난다.이 계란은 케이지에서 기르지는 않았지만 놓아 기른(free-range)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설이다. '날갯짓을 겨우 할 정도의 공간'이라고 써 있다.[사진 초이스]

케이지 프리 계란은 일반 계란보다 비싸다. 월마트처럼 가격 경쟁이 치열한 대형마트에서 케이지 계란을 퇴출하는 것은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케빈 가드너 월마트 대변인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년에 걸쳐 케이지 프리 계란이 고급 상품에서 일반 상품으로 바뀌게 될텐데, 그에 따라 판매 가격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나서서 케이지 프리 계란 생산과 판매를 늘리면 가격이 내려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일반 계란(12개)이 평균 1.29달러쯤 할 때 케이지 프리 계란은 2.99달러다.

고급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도 대형마트들이 결심하는데 한 몫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케이지 프리 계란 판매량 증가폭이 크가. 지난해 닐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케이지 프리 계란 판매는 전년대비 20.4% 증가한 반면 일반 계란 판매는 3.8% 감소했다.

넓은 목초지에 닭을 놓아 기르는 프리레인지 방식. [사진 초이스]

넓은 목초지에 닭을 놓아 기르는 프리레인지 방식. [사진 초이스]

케이지 프리 계란 생산과 유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유통업체와 협력업체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계란 농가는 판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값비싼 계란 생산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테스코는 "100% 케이지 프리 계란으로 전환하기 위해 업계 전문가들과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검토했다"고 밝혔다. 테스코 관계자는 “계란 농장이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투자를 하도록 확신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먼저 케이지 계란을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하니 공급업자들이 방안을 강구하는 수순이다. 테스코 최대 계란 공급업체인 노블푸즈의 벨리 모룰루오는 “테스코가 계란 판매 품목을 바꾸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줬다”며 “계란을 생산하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축 동물 복지 단체인 ‘세계 농업 컴패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영국에서는 2000만 마리가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다. 테스코의 조치로 한 해 산란계 200만 마리씩이 케이지에서 해방될 것으로 추산했다.

일각에서는 9년여의 준비 기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트랜지션 네트워크의 롭 홉킨스 대표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계란 농장들이 사육 환경을 바꾸는데 왜 9년이나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다른 비즈니스 플랜의 전환은 이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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