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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현장]강제징용노동자상, 용산역과 부평공원에 첫 건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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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당한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모습. 임명수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당한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모습. 임명수 기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는 ‘일제강점기 징용 노동자상’이 8·15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용산역 광장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용산역은 일제가 강제징용자들을 일본이나 사할린 등으로 보내기 위해 집결시킨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용산역 동상은 지난해 8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일본 교토(京都) 단바(丹波) 망간광산 앞에 처음 세운 것과 동일한 모델이다.
용산역 동상은 지하 갱도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 지상으로 나온 깡마른 노동자가 곡괭이를 들고, 눈이 부신 듯 햇빛을 가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동상을 제작한 부부작가 김운성·김서경씨에 따르면 동상의 오른쪽 어깨에 앉은 새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동상 뒤쪽 아래에는 “어머니 보고 싶...”이라 새겨져 있다.
부평공원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공장부지로 일제 시절 국내 최대 일본군 조병창(현 부평 미군기지 부지) 맞은 편에 있다.
부평공원 동상은 시민 900여 명과 시민단체 등이 낸 성금 1억6000만원으로 만들어졌다. 가로 1.5m, 세로 0.6m, 높이 3m 크기다.

용산역은 강제징용자 집결 전초기지 역할한 곳 #부평은 옛 일본군 조병창 건너편 미쓰비시 부지에 #시민들 성금 모아 지난 12일 부평공원에 세워 #같은 날 용산역에도 일본에 세워진 동상 모델과 같아 #주최측 "노동자 고통 기억, 일본 사과 필요" #징용배상 소송 14건, 대법원 판결 계속 미뤄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린 징용노동자상이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사진은 징용노동자상에서 딸의 모델이 된 지영례 할머니(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와 아버지 모델인 고 이연형씨의 딸 이숙자(왼쪽에서 세번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린 징용노동자상이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사진은 징용노동자상에서 딸의 모델이 된 지영례 할머니(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와 아버지 모델인 고 이연형씨의 딸 이숙자(왼쪽에서 세번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인천 부평공원 동상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징용노동자인 아버지가 정면을 또렷이 응시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오른손에는 해머를 잡고 있고, 딸은 아버지의 오른팔을 꼭 붙들며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다. 동상의 모티브는 부녀지간이지만 실제 모들은 부녀지간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 12일 부평공원 동상 제막식에는 동상 관련 두 명의 여성이 초대됐다. 한 명은 동상 속의 딸로 묘사된 지영례(89)할머니다. 지 할머니는 강제징용 돼 부평 조병창 의무실에서 일했다. 또다른 한 명은 동상에서 아버지로 묘사된 고(故) 이연형(2009년 87세로 작고)씨의 딸 이숙자(78)씨다.

지 할머니의 며느리(66)는 “어머님께서는 일본인들이 일제 말기에 조선 여성들을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려 하자 ‘정신대에 가느니 차라리 징용 가겠다’고 해 끌려간 것”이라며 “당시에는 그것 외에는 선택의 길이 없었다고 어머님께서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인천 부평 조병창에 징용돼 일했던 지영례 할머니가 지난 12일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 참석해 인터뷰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인천 부평 조병창에 징용돼 일했던 지영례 할머니가 지난 12일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 참석해 인터뷰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지 할머니는 강제징용 시절 오빠의 친구가 반장으로 있어 인천 부평 조병창 의무실에서 16세부터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지 할머니는 “당시 조선인들이 일을 하다 팔이 잘려 나간 채 병원으로 실려 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과 함께 강제징용 됐는데 몇몇 친구는 조병창으로 끌려가 일을 했다”며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조선인들이 너무 많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인들은 자기들만 ‘사람’이고 조선인은 사람 취급도 안했다. 지금 그들을 만난다면 총으로 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분노했다.

고 이연형씨의 딸 이숙자씨는 “아버지는 일본인이라면 치를 떨었다. 아버지께서 강제징용 돼 일했던 곳에 동상이 세워져 더 의미가 깊다. (강제징용에 대한) 더 많은 얘기를 들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한 아버지는 그나마 이름이나 남았는데 이름 없이 잊혀져 사라진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번 징용노동자상 건립을 계기로 그들의 삶이 잊혀지지 않고 가족들의 아픔도 기억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당한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지난 12일 동상 제막식에서 동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당한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지난 12일 동상 제막식에서 동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

동상을 제작한 이원석(51) 작가는 “15세 앳된 딸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던 인권유린과 그 경험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과 초조, 긴장 등의 감정을 표현했다”며 “아버지는 단순한 노동자를 넘어 식민지 백성의 자각과 해방에 대한 염원, 나아가 지배·피지배가 없는 새로운 세계 건설에 대한 의지와 예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인물의 각기 다른 시선, 좌대 위치의 특별한 배치(정면 아닌 오른쪽에 위치함)는 온 민족이 그토록 염원해온 해방을 앞둔 시점의 긴장된 시간과 공간을 나타냈다”고 덧붙였다.

김일회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 상임대표(신부)는 제막식 인사말에서 “인천 부평은 일본군 무기공장 육군조병창이 있는 곳이며, 동상이 세워진 부평공원은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이 있었던 곳”이라며 “강제 동원돼 수탈당한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잘못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징용노동조상을 세웠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인천 지역의 노동자는 현재까지 151명으로 확인됐다. 이중 32명은 어린 소녀였으며 광산과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이는 6명으로 집계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징용노동자상이 지난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사진은 완성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 [사진 이원석 작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징용노동자상이 지난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사진은 완성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 [사진 이원석 작가]

한편 국내에서 진행 중인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대상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14건이다. 이 가운데 3건은 대법원 상고심 또는 재상고심이 진행 중인 상태다. 나머지 11건은 1심이나 2심 단계다. 이런 소송은 2000년 5월 처음 시작됐지만 완전히 결론이 난 사례는 없다.

대법원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가 잇따라 패소하자 2012년 5월 파기환송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이뤄진 파기환송심에서는 피해자들이 있따라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근로정신대 사진 자료. [중앙포토]

근로정신대 사진 자료. [중앙포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법원은 재상고심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첫 소송에 대한 재상고가 이뤄진 2013년 7월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재상고심이 끝나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사실상 직무유기 때문에 당초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들 가운데 4명이 확정 판결을 받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인천·광주광역시=임명수·김호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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