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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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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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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하고 대부분의 주요 정당들도 개헌에 동의를 하고 있어 내년에는 개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개헌해야 할 주요 부분은 정치 체제다. 나아가 정당 및 선거제도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제도를 도입하여야 할 것인가.

개인을 선택하는 현행 대통령제 #정당 중심 정치발전 가로막아 #패자도 지지율만큼의 지분 가지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가장 합리적 #과반 정당 없으면 연정 해야 #정책개발 게을리하는 정당 도태 #치열한 선의의 경쟁도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해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를 관철했다. 그런데 그동안 6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어느 한 사람도 국민 대다수의 존경을 받으며 임기를 마친 사람이 없다. 대통령들의 임기 초에는 지지율이 높다가도 임기 말이 되면 많은 국민이 “선거 잘못했다”거나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한탄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이렇게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제라고 생각한다. 그중 첫째는 개인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즉 주권자인 국민은 대통령 한 사람을 뽑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그 사람에게 모두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권력을 갖게 된 사람은 자동으로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정책의 연속성이 있을 수가 없다. 같은 정당이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이 모두 달라진다. 다음 대통령은 지금까지 전임자가 해 왔던 정책을 다시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하에서는 정책을 수행할 정당이 성장할 토대가 마련될 수가 없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대통령 후보들을 검증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국민이 후보 개개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기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쉽다. 인기란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실체가 드러나면 추락하게 되는 것 이다.

개인은 단기간에 검증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현행 제도로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된 정치를 하더라도 탄핵당하지 않는 한 임기까지 그에게 그 잘못을 시정하도록 하기 가거의 불가능하다. 또 문제는 현대사회가 한 개인이 결정하고 이끌어 나가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이나 선거법의 둘째 문제는 현재의 대의민주제도로 국민의 지지를 담아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대사회는 다원화되어 가고 우리나라도 이미 다당제가 형성되고 있다.

다당제에서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면 3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당선이 되고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50% 이하의 지지를 받고도 당선되는 작금의 우리나라의 이 제도로는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사람을 대표로 뽑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민이나 주민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이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승자독식 제도란 것이다. 즉 30%든 40%든 당선되는 사람은 전권을 가지게 되지만 떨어지게 되면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모든 선거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당선되기 위해서 사생결단을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독일의 정당명부식 내각책임제의 채택이다. 정당명부식 선거제도는 필자가 아는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제도이다.

정당명부식 내각책임제 선거제도에서는 패자도 지지율만큼의 의회 의석의 지분을 갖기 때문에 지지자들을 대변할 수가 있다. 정당지지율 50% 이상에서는 단독 집권이 가능하지만 그 이하일 경우에는 정책에 대해 합의를 하고 연정을 해야 한다. 지자체장도 각 정당별 정당 내에서 결정하여 후보를 내지만 각 지방의회 선거를 통하여 50% 이상의 의석을 내는 정당에서 혹은 정당 간 연립을 통해서 지자체장이 나오게 된다. 정당들은 자신들의 지지율만큼 의석수가 배분되기 때문에 정책개발을 게을리 하는 정당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정당끼리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정당이 성장하기 시작하고 진정한 실력자가 지도자로 정당에서 선출되고 협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극단적인 계층 간, 이념적인 대립도 의회 내에서 정책 연대를 통해 혹은 연립 정권을 형성하여 원만히 수렴될 수가 있다.

이번만큼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 그 어떤 정치세력의 유, 불리를 떠나서 제대로 된 개헌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정치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해 통일을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대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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