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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소설가 이청준 vs 시인 정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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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39년생 동갑내기인 소설가 이청준(64)씨와 정진규씨는 작품을 통해 대화를 해 온 사이다.

90년대 초반 이씨가 정씨에게 털어놓은, 치매기가 도를 더해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정씨의 시 '눈물'로 고스란히 탈바꿈됐다. 이씨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발표한 장편소설 '축제'에서 '눈물' 전문을 인용했다.

'눈물'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아들을 손님으로, 책을 나무로, 강아지를 송아지로, 큰며느리(이씨의 형수)를 아주머니로 부르면서도 몸과 관련된 어휘들, 배고프고 춥고 졸립고 뜨겁고 쓰다는 표현들은 정확히 사용하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을 통한 대화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씨는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작 중 하나인 '觀梅島(관매도)'에서 이씨의 같은 이름의 시 '觀梅島'를 읽고 들었던 감흥을 노래했다.

정씨는 이씨와 대화.소통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이씨의 소설은 깨달음과 함께 시적 자극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씨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깨달음'에 가점을 주는 취향은 정씨의 시론과 직결된다. 정씨는 "시는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적 상징은 묘사적 상징이 아니라 상징 자체가 살아있는 실물을 찾아내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정씨는 "'봄비'는 생명체들이 다른 생명체들과 화응하고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발견한 결과 씌어진 시"라고 말했다.

봄 가뭄 끝에 비내리기 직전 나무들은 가지 끝에 물방울을 맺혀 비를 마중한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교감에서도 미리 젖어 있어야(상대방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돼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는 점을 봄비를 기다리는 나무를 보고 깨달은 것이겠다.

'깨달음'에 관한 한 이씨의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꽃지고 강물 흘러'도 그리 먼거리에 있지 않다. '꽃지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홀로 돌보며 고향집을 지키던 큰 형수가 효도란 효도는 다한 것처럼 보인 겉모습과는 달리 생전 어머니를 말도 못하게 구박했다는 점을 의심하게 된 시동생의 내면을 다룬 얘기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형수는 생전 어머니에게 가증스러운 짓들을 저지른 게 틀림없지만, 미운 형수도 꽃지고 강물 흐르게 하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인임을 깨닫고는 미워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된다.

이씨는 "사람의 삶이라는 게 마지막에는 같은 길을 가게 된다. '결국 형수는 예전의 어머니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설 '축제'에 나오는 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 시 '눈물'에 나오는 어머니의 문제는 문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같은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번 소설을 통해 그 숙제를 마무리지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대담은 "문학에서만은 스스로 무대에 걸어올라가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이씨가 거듭 고사해 성사되지 않았다. 사실 두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거나 술자리를 같이 할 만큼 절친하지는 않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대화를 해 온 두사람은 대면없이도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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