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과 분노' 한마디에…코스피·원화값 급락

중앙일보

입력

'화염과 분노.' (fire and fury)

코스피 2368.39…지난 6월 수준으로 뒷걸음질 #'강 대 강' 구도에 불확실성 커져 #달러당 원화 가치 하루새 10원 급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9일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어놨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6.34포인트(1.1%) 내린 2368.39에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6월 21일(2357.53) 이후 가장 낮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역사적인 고점(7월 24일·2451.53)을 찍으며 거침없이 올랐던 코스피가 북한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지금까지 북한발(發) 지정학적 위험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이번엔 과거보다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견해가 퍼졌다. 미국과 북한이 '강 대 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북한 리스크에 휘청이는 코스피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9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6.34포인트 하락한 2,368.39로 장을 마감했다. 2017.8.9   jieu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북한 리스크에 휘청이는 코스피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9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6.34포인트 하락한 2,368.39로 장을 마감했다. 2017.8.9  jieu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휴가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정상 상태를 넘어설 정도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며 "전 세계가 지금껏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달 말에 나온 미국 국방정보국(DIA)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보도한 뒤 나왔다.

여기다 북한이 이날 "화성-12형 미사일로 괌 주위를 포위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북한은 지난 5월 사거리 5000km 안팎으로 추정되는 화성-12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실제 괌을 공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신중론이 우세하지만, 예단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양쪽의 위험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이날 하루에만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에서 3100억 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았다. 기관이 3400억원을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월 기준으로 7개월 연속 국내 주식을 사들였던 외국인은 8개월 만인 지난달부터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순매도 규모는 3900억원이었다. 이달 들어선 매도세가 더욱 거세졌다. 이날까지만 지난달 순매도 규모의 배에 가까운 69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4월 이후 다시 북한 리스크가 부각된 이유가 북한이 미국의 인내 범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번 위험이 단기에 해소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양국 간 발언 수위에 따라 외국인 역시 순매도와 순매수를 반복하는 현상이 단기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대형주는 대부분 내렸다. 시총 1위 삼성전자는 3.02%, 2위 SK하이닉스도 3.17% 각각 하락했다. 그밖에 삼성물산(-2.89%), LG화학(-2.21%), 네이버(-1.48%)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무더기로 내림세를 기록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원화 가치는 하루 만에 10원 넘게 급락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10.1원 내린 1135.2원에서 거래를 마쳤다. 원화 가치는 지난달 초 북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이슈가 부각됐을 때도 1150원대까지 급락한 적이 있다. 지정학적 위험에다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질 경우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은 더욱 세질 수 있다. 주식을 팔고 난 뒤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민경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 이후 미국 뉴욕시장에서 거래되는 한국 상장지수펀드(ETF)가 장중 1% 가까이 하락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외국인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로 돌아설 수 있다"며 "원화 약세 압력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당 원화 환율 단기 고점을 1140원대로 올려잡고(원화 가치 하향 조정) 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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