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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의 역사 선생님들…다섯 번째 ‘위안부 기림일’ 집회에서 외치다

중앙일보

입력

“제가 올해 90살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입니다. 같이 운동하입시다!”

9일 오후 서울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90) 할머니가 연단에 올라 외쳤다. 학생과 시민 1000여 명은 부채를 흔들며 "와"하는 함성으로 화답했다. 부채에는 ‘공식사죄’, ‘법적배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1295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참석한 학생들. [연합뉴스]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1295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참석한 학생들. [연합뉴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서울 예일여고 역사동아리 ‘아이비(I 飛)’는 이날 제 1295차 정기 수요시위를 열었다.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를 겸한 집회였다. 이들은 공식 사죄와 함께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기록하고 추모비도 건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집회의 주제는 ‘2017 김학순, 다시 태어나 외치다’였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2012년 12월 대만에서 개최된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이날을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다섯 번째를 맞은 위안부 기림일은 김 할머니의 용기와 정신을 기억하는 자리였다.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1295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1295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오산 세마고교 학생회 학생들은 직접 만든 노란색 공책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공책 표지엔 ‘평화의 소녀상’ 그림과 함께 ‘진실을 바라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학생들은 ‘12ㆍ28 한일 합의 무효’,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보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등의 피켓을 들었다. 학생들은 “우리 여기 김학순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할머니들을 응원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1)ㆍ길원옥(90) 할머니도 함께 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의 부축을 받고 연단에 올라온 김복동(91) 할머니는 “우리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 희생 당했지만, 우리 후손들에겐 절대 우리 같은 일이 생겨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우리 후손을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살아서 힘을 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여기 모인 여러분이 너무나 예쁘다. 이렇게 살아 남아서 여러분께 역사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수요시위에서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 [연합뉴스]

수요시위에서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 [연합뉴스]

윤미향 대표는 이날 국민모금운동을 선포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여성 인권상’을 수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윤 대표는 “평생을 인권운동가이자 역사선생님으로 살아오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오는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광화문광장에서 할머니들께 여성인권상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100만 명이 100일동안 1000원씩 모아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일본의 보상금 10억엔을 반환하고, 또 다른 해방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대협은 이날부터 14일까지를 ‘위안부 기림일 주간’으로 지정했다. 수요시위를 시작으로 10일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상영회를 열고, 11일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한 명』을 쓴 김숨 작가와의 간담회를 연다. 위안부 기림일 당일인 14일에는 서울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나비, 평화를 노래하다’ 문화제를 개최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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