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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의 새 물결] 1. 바이칼을 찾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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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 지식 사회에서 화제가 되거나 혹은 논란이 되는 주제들을 대중적 눈높이에서 진단해 보는 '지식계의 새 물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대중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지식사회에 반영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첫 회로 '바이칼을 찾는 사람들'을 준비했습니다.[편집자]

며칠 전 나는 또 신들린 듯 시베리아 바이칼호 지역을 다녀왔다. 지난 2년 동안 여섯번째 발걸음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바이칼호 서남부 지역 산악지대를 가보았다. 아르샨(Arsyan)이라는 원주민 토속어 지명이 풍기는 아련한 느낌대로 그곳은 신비하고 청신한 풍광들로 가득찬 곳이었다.

바이칼호가 물의 천국이라면 동사얀산맥이 병풍처럼 둘러 지나가는 아르샨 지역은 만병을 고치는 영험한 약수가 펑펑 샘솟고 산속 도처에 온갖 약초가 즐비한 또 다른 천국이자 휴양지였다.

지구상 육지 면적의 12분의1이나 되는 광활한 시베리아 동쪽 한복판에 초생달 모양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담수호 바이칼, 이곳 주변에는 이처럼 매력적인 장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 남한 면적의 3분의1인 광대한 호수이기에 그만큼 다양한 지형과 생태적 특성을 지닌 듯하다.

요즘 바이칼호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알게 모르게 부쩍 늘고 있다. 올 여름에만 적어도 1천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이 바이칼호를 찾은 것으로 집계되었고, 삼삼오오 방문한 사람들까지 치면 지난해에 비해 몇배 늘어난 수치이다.

사실 바이칼호 지역은 우리와 큰 경제교류도 없고 따라서 교통편도 매우 불편한 곳이다. 올 7월부터 바이칼의 관문도시 이르쿠츠크까지 직항기가 운항되어 인천에서 4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지난해만 해도 몽골 울란바토르를 경유하여 그 다음날 들어가거나 아니면 연해주쪽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온종일 차를 갈아 타고 가야 했다. 이렇듯 어수선한 교통편에도 불구하고 허위허위 수많은 한국인이 바이칼호를 찾는 올해의 이 기현상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바이칼 중독환자 수준인 나의 입장과 경험을 토대로 추정해 본 즉 이는 기실 21세기 한국인의 문화적 대이동의 첫 징후가 아닐까 싶다. 즉 중세 이후 한반도인으로 강제되어 왔고 20세기 말 세계화의 격랑을 거치며 그간 잊혀져 왔던 자신의 본모습을 서서히 되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이칼호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이러한 본능적 귀소의식의 발로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1990년대 동아시아 지정학 판도의 변화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중국과 수교한 후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 등반이 전 국민적 유행으로 번졌고, 금강산 관광 또한 통일과 한민족 정체성 확인 작업의 일환으로 인식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이제는 만주와 중국대륙을 넘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으로 우리의 뿌리 찾기 영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렇지만 광활한 시베리아 중에서 유독 왜 바이칼인가?

첫째 이유로 수천년간 내려온 우리 국학의 정수를 이어받은 선대 학자들의 지적을 들 수 있다. 이미 20년대에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가 불함산(不咸山)-부르한(Burkhan)이란 몽골 알타이어에서 유래, 천신(天神)을 뜻함-즉 백두산의 단군에 있으며, 단군의 성지 불함산 문화가 만주를 비롯하여 시베리아.중앙아시아.소아시아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세계의 고대문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80년대 중반 소설 '단'을 통해 단군을 시조로 하는 한국선도의 중흥을 예고했던 봉우 권태훈 선생 또한 문집 '봉우일기'에서 한민족의 기원을 만주 지역과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둘째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뒷받침하는 학계의 정설은 아직 없지만,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뿌리를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 및 그 곳에 사는 몽골로이드 황인종 원주민 문화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요즘 널리 확산되어가기 때문이다.

좀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우리와 바이칼호 부리야트 원주민이 전통 문화를 교류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와 부리야트족 총각.처녀들이 만나 교제하고 친구가 되며 나아가 결혼으로 짝짓기 하여 같이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르쿠츠크 대학 민속학자인 블라지미르 교수의 제언이기도 하다. 그는 에벤키족과 러시아인 혼혈로서 평생 부리야트족 전통문화 연구에 종사해 왔고 어느 러시아인, 부리야트인 학자보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즉 혼혈문화의 좋은 측면이다.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북방 샤머니즘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시베리아 샤머니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는 미천하기 짝이 없다. 바이칼호는 일면 샤먼의 바다로 전해지듯이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역이자 중심축이었고 알혼섬 샤먼바위는 그 상징물로 남아 있다.

셋째로, 바이칼은 지구상에 몇 안남은 천혜의 생태환경자원을 지닌 관광명소이다. 인천에서 불과 비행기로 네시간이면 도달하는 가까운 거리에 끝없이 펼쳐진 장엄한 초원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산맥들의 대륙적 풍광이 존재함은 실로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우리에게 바이칼은 아직 문화적.혈연적 뿌리 문화연구의 답사지로서밖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생태과학자들과 생물학자.지질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바이칼호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깊은 연구를 통해 '또 하나의 지구''살아있는 진화 박물관' 등의 별명을 붙일 정도로 세계 생태계의 중요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

바이칼호 지역은 시베리아 전지역 가운데 우리 민족의 시원과 뿌리에 가장 닿아 있는 문화적 동질성이 많은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우리와 사촌 간인 부리야트 몽골족들이 살아오며 동서남북으로 퍼져서 많은 교류가 있어왔다.

혈연적 동질성을 밝히는 인종주의적 관점보다는 지금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의 조상들이 과연 누구와 어떻게 어떠한 경로로 대륙과 정신문화적 교류를 해왔으며, 그리하여 형성된 문화적 동질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를 궁구하는 것이 오늘 21세기에 꼭 필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혼 회복의 길이요, 바이칼 방문의 대승적 화두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리라 본다.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장

*** 약력=▶출판사 정신세계사 편집주간 ▶우리 민족의 기원을 만주.시베리아에서 찾으려는 봉우사상연구소소장 ▶저서'바이칼, 한 민족의 시원을 찾아서'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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