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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국제영화제 주목할 감독] 프랑스 장 피에르 리모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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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노보(Novo)'는 '메멘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기억상실에 빠진 한 남자와 기억을 되찾아주려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를 이용해 강렬한 성적 체험을 얻으려는 여성들을 등장시켜 '망각과 기억'의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장 피에르 리모쟁은 처음엔 실제 이 병을 앓는 환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다. 그 환자는 '람보'를 보고는 뒤돌아서면 곧바로 내용을 잊어버리고 매일 다시 보곤 했다고 한다.

"만약 남녀간 사랑에서 기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를 기억하지 못한 채 매일 새롭게 육체관계를 맺고 애정을 나눈다면 그건 비극일까 행운일까. 거기에 착안해 픽션으로 바꾸기로 했죠."

그는 뜻밖에도 뉴욕에서 우연히 본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자기 영화에 작은 힌트를 줬다고 했다. "얼굴이나 몸매가 빼어난 직업 배우가 아니라 평범한 외모를 한 보통 사람을 출연시킨 과감성에 놀랐고, 영화의 한 장면 즉 도로 한 켠에서 인부들이 땀을 흘리고 일하는데 옆에서 남녀가 애정표현을 하는 그 엉뚱한 조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평론가 출신인 그는 에로티시즘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서 "철학서적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와 똑같은 감동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영화란 궁극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대중적인 영화라도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지지 않는다면 실패라는 것.

그는 이어 "세계적으로 모든 것이 상품화로 귀속되는 시대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 것인가가 모든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대중의 지적 능력을 감퇴시키는 TV가 점점 더 득세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아주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한국 화가 이 불의 전시회를 보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맛봤다는 그는 "그러한 이종(異種)문화간의 교류가 늘 흥미롭다"면서 한국에 수입돼 곧 일반 극장에 걸릴 '노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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