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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마윈의 점원 없는 편의점, 인간과 인공지능 일자리 싸움 시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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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피시(Phish)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fish)와 철자가 비슷한 이 말은 뜻도 비슷하다. 해커에 의해 낚이거나 관리되는 계정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퍼진 단어이니 벌써 세상에 나온 지 꽤 됐다. 하지만 피시라는 단어보다는 속여서 낚는다는 뜻의 피싱(Phishing), 피싱보다는 ‘보이스 피싱’이라는 말이 우리에겐 더 익숙하다.

최근 페이스북에 500여 명의 친구를 가진 영국 사진작가 미아 애시(Mia ash)라는 여성의 계정이 해커가 만든 피시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됐다. 해커는 1년 이상 이 가상의 여성을 ‘키운’ 뒤 기밀을 빼낼 회사의 직원에게 접근, 한 달 넘게 사적인 대화로 신뢰를 쌓았다. 그 뒤 스파이웨어를 설치하도록 e메일을 보냈다가 보안요원에게 발각됐다.

e메일로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다 들켰다니 정작 해킹 방법은 유치한 수준인 듯하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은 해킹 그 자체보다 ‘미아 애시’라는 가상인격에 집중됐다. 마치 인간처럼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녀 스파이 ‘마타하리’ 같은 팜파탈은 이제 사이버 공간 속에서 가상인격과 인공지능을 갖춘 계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미녀의 얼굴, 때로는 미군 장교의 모습이다. 소셜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미소 짓는 외국인이 느닷없이 친구 요청을 하는 것을 자주 겪는다. 이런 낯선 얼굴이 친구 요청을 하면 속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나와 함께 아는 친구도 많고,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라면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 인공지능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9000부터 ‘터미네이터’의 T-800까지 늘 남성적이고 직접적인 위험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영화 속 인공지능은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으로 더 자주 등장한다. 영화 ‘그녀(Her)’에서 인공지능은 로맨틱한 연애 대상이고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인공지능의 눈빛은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애처롭다. 영화에서조차 인공지능은 더욱 교묘하고 섬뜩해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특정한 데이터에 맞도록 학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정이 들고 추억이 쌓이는 시간이 된다. 서로의 관심사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축적되면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어쩌면 옛날 집집마다 간장을 담그듯이 가까운 미래에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인공지능을 키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도 개인의 데이터에 따라 기계학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끼리 언어를 개발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놀란 페이스북 개발자가 서둘러 꺼버렸다는 ‘인공지능 왕따’ 보도가 있었다. 낚시 기사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다. 분수대에 빠진 경비로봇 K5가 격무에 시달려 자살했다거나 오작동으로 가정 폭력을 경찰에 신고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사람을 구한 것처럼 알려진 것도 마치 인공지능이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한 것처럼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얼마 전 중국 알리바바 그룹 마윈 회장은 알바생 대신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편의점을 선보였다. 아마존고처럼 점원 없는 가게가 운영되는 것이다. 국내 편의점도 곧 인공지능 도우미가 주문을 받거나 점원을 도울 예정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두려운 이유는 팜파탈 같은 가짜 계정의 유혹이나 초지능의 등장이 아니라 바로 이런 데 있다.

1980년대 버스 안내양처럼 가난한 청년들이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뺏기는 데 심각성이 있는 게 아닐까? 자리를 뺏기고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지배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임문영 인터넷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