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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회] 한·미 FTA 협상개시, '왜' 지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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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한미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어떻게 한미FTA 협상개시에 양국정부가 합의할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한국과 FTA협상을 하려는 것은 그런대로 이유가 있다. 첫째로 미국은 FTA를 안보전략상의 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바레인, 및 요르단과 FTA를 맺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득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밀접해지는 것을, 가능한 한, 막아야 할 전략적 이익이 있음은 주지되는 일이다.

둘째로 미국의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해소 방안이다.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일본, 중국 및 한국 등 동양 3국에 집중되어 발생하고 있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 3국이 조만간 외환보유고로 갖고 있는 달러화를 유로화 등 다른 통화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가능성이 현실로 실현되는 경우 미국은 금융시장의 교란과 금리의 급격한 상승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런 교란요인이 미국경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서는 가늠이 불가능한 정도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미국의 교역 7대국에 속하는 한국을 FTA 파트너로 잡아두는 것은 여러 가지로 미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특히 금융부문과 영화부문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이용하여 한국과의 경상수지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설사 그것을 크게 줄일 수 없다고 해도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를 미국금융기관들이 대신 운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기만 하면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가 다른 통화로 바뀔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을 발판으로 하면 중국에 대한 수출을 더 늘릴 길도 찾아질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의 FTA를 맺는 것에 이런 이점들이 있는데, 한국에는 어떤 이점이 있는가? 우리나라가 지금 정상적인 정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면 물론 미국과 FTA를 체결할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많이 있다. 첫째로 미국과의 FTA를 통해 미국에 대한 수출을 더 늘리면 그만큼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주는 만큼 우리나라는 외교적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덜 받게 될 것이다.

둘째로 미국과의 FTA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시켜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런 한미동맹의 강화는 대중국 수출의존도의 하락과 더불어 우리 정부의 중국에 대한 외교적 발언권을 강화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외교적 발언권의 강화는 우리의 대북자세에 상당한 변화를 주게 될 것이고, 여기에 행운까지 따른다면, 그것은 북한의 체제변화를 지금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오게 할 수도 있게 해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지금처럼 보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우리나라 양쪽에 FTA를 체결하는 것을 독려하는 요소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노 정부가 한미 FTA협상개시를 결정한 것은 정말로 의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노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면 한국과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친북노선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노 정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북한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몰라서 FTA협상개시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정말로 의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노 정부는 미국과의 FTA협상개시를 이 시기에 결정하였을까? 이 문제를 탐정이 범죄사건을 추리하듯 추리해본다면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현 정부가 레임덕 상태에 빠져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각 기관이 제멋대로 움직일 가능성이다. 이런 가능성은 최근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암시해준다. 소위 소수가구의 근로소득추가공제제도를 재경부가 노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방안용 재원조달을 위해 폐지한다고 발표했으나 열린우리당이 5월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여 보류하기로 결정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주한미군의 유연성부여와 관련된 비밀문건이 유출되어 안보문제에 관한 반미강경파와 온건파가 투쟁중임이 표면화된 것에 볼 수 있듯이 노 정부는 각 기관별로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서로를 헐뜯는 무질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무질서 속에서 FTA를 담당하는 기관이 우리 경제의 필요성만을 보고 FTA협상을 추진해서 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첫 번째의 가능성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비밀문건 유출사건이 보여주는 문제이다. 지금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김 전대통령이 기차로 북한을 방문해서 6.15공동선언을 더 진전시킬 방안을 마련하고 그리고 조만간 노 대통령과 김 정일이 제주도와 같은 곳에서 만나 중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2007년 대선에서 좌파가 다시 승리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금 노 정부는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미국과의 FTA협상개시를 결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에게는 한국과의 FTA가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노 대통령이 비록 부시 대통령의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많이 했지만 미국이 FTA협상개시에 응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노 정부는 FTA협상을 미끼로 미국에게 대북압박을 늦추어 달라는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노 정부는 FTA협상을 실패로 이끌어서 미국이 더 빨리 한국에서 실망하고 철수하게 하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둘째로 노 정부 내부의 구석구석에서, 그리고 열린우리당 내의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지금 노 정부가 가는 방향과 북한에 대해 취하는 조치들이 옳지 않다고 보고 있을 가능성이다. 열린우리당이 5월 지방선거를 이유로 양극화 해소용 재원조달을 위한 소수가구의 소득공제제도 폐지를 유보한 것은 이들의 상당수가 노 정부 이후를 불안하게 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외교부에서 미국과의 FTA협상을 적극 주장하여 노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열린우리당이, 비록 규모는 축소시켰지만,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던 점,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아직은 사학법처럼 밀어붙이려 하고 있지 않는 점들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이들은 국가의 미래를 반북한적 방향으로 맞추는 일에 자기들의 실적을 쌓아서 2007년 이후의 자기들 미래도 보장받으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느 것이 주된 힘을 발휘하여 노 정부가 미국과의 FTA협상을 개시하게 되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국과 FTA를 맺는 것이 한미안보조약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 정부를 불안하게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포용하고 FTA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들인 영화계와 농민들을 설득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미국과의 FTA가 성공적으로 맺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보안법을 지키는 데 드리는 노력 이상의 노력이 필요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디지털국회 김한응]

(이 글은 인터넷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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