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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윈스턴·처칠」은 위대한 패자였다. 그가 보수당의 공천을 받아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입후보한 것은 25세때의 일이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의 실패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세기도 넘게 정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모두 다섯차례나 선거에서 쓴 잔을 마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참담했던 시절은 1929년 여름 선거에서 낙선한 때였다. 그때 나이 54세,정치인으로서 대기만성의 연륜이었다. 그후 10년 가까이 영국의 어떤 내각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처칠」을 해군장관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 것이다.
1940년 5월8일 「처칠」은 하원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 뿐입니다.』
그후 5년, 영국은 죽음의 전쟁을 계속했다.
『신은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전쟁은 여러분의 승리로 끝났읍니다.』
1945년 5월8일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고 「처칠」은 만면에 희색을 담고 세계를 향해 「V」사인을 했다. 한 시대가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그후 2개월이 지나 영국은 총선을 선포했다. 평화시를 이끌 조각을 하려는 것이었다.
『전쟁의 영웅』, 『영국사상 최고의 용자』 「처칠」은 당연히 당선되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반대였다. 5년 3개월간의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에 대한 국민의 보상은 너무도 허무했다. 영국인들은 그에게 「참고 기다리는 용기」를 가르쳐 주려는 것 같았다.
「처칠」의 위대함은 빛나는 승리보다 위대한 패배에 있었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위대한 저술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제1차대전의 각서 『세계의 위기』(4권·1923∼1929년), 『제2차대전 회고록』(1948∼1954년) 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제2차대전 회고록』은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모두 실패의 암울한 시간에 집필한 것이었다.
「처칠」은 위대한 승리 아닌 위대한 실패로 위대한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
12월 선거의 마무리를 보며 우리는 위대한 패자의 츨현을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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