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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 증세'로 소득주도 성장 뒷받침 전략...증세효과 떨어지고 편가르기 우려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하며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하며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연합]

조세정책은 정권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법인세율 대폭 인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감세 정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새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도 이런 방향을 담았다.

[2017년 세법개정안] # "양질 일자리 늘리고 소득분배 개선" 목적 명시 # 증세 문 열어..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른 방향 #증세 대상, 소득세 9만3000명, 법인세 129개 기업 #세율인상 따른 증세효과는 연 3조6300억원에 그쳐 #전문가 "경제 관점이 아닌 정치 논리에 따른 증세"

‘2017년 세법개정안’의 부제는 ‘양질 일자리 확대, 소득분배 개선’이다. 지난달 정부가 내놨던 ‘새정부 경제정책방향’과 일맥상통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재원조달 및 분배개선에 세법을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우리 경제ㆍ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할 때”라며 “이런 방향에 맞춰 조세정책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세법개정안 기본 방향[자료 기획재정부]

2017년 세법개정안 기본 방향[자료 기획재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위해 정부가 손을 댄 게 ‘증세’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감세’에서 방향을 틀었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 역시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하며 증세를 금기시 했다.

문재인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명목세율에 손을 댔다. 과세표준 (과표·소득에서 공제액을 뺀 금액으로 세금을 매기는 기준)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법인세율 25%를 적용키로 했다. 기존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다. 이 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적용되면 2009년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이후 9년전 수준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도 42%로 올린다. 과표 3억원 초과~5억원 이하에는 40%, 5억원 이상에는 42%의 세율이 매겨진다. 이렇게 되면 소득세 최고세율은 1995년(45%)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된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학부는 “큰 정부와 양극화 해소를 주장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고소득자와 재벌에 대한 세율 인상을 통해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증세의 문을 열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번 세법개정은 ‘핀셋 증세’다. 법인세ㆍ소득세율 인상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법인세율이 올라가는 기업은 지난해 기준 129개다. 소득세율 인상 대상 인원도 9만3000명에 불과하다. ^근로소득세 2만 명(상위 0.1%) ^종합소득세 4만4000명(상위 0.8%), 양도소득세 2만9000명(상위 2.7%) 수준이다.

세율 인상에 따른 세수 효과는 연간 3조6300억원(법인세 2조5500억원 + 소득세 1조800억원) 수준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이외에 투자세액공제 축소와 같은 비과세 감면 등으로 더한 세수 효과는 연 5조5000억원 이다. 이에 5년을 곱해도 27조5000억원이다. 한정된 이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세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문재인 정부 공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부 추정 소요 재원(5년간 178조원)에 턱없이 모자라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런 정도의 증세로는 복지 재원 달성에 상당히 부족하다”라며 “정부가 지출 개혁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만큼 재원을 마련하려면 보다 넓은 수준에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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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보편적 증세’에 대해서는 문을 닫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반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며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다”라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근로소득자 면세자 규모를 축소하려면 일반 서민이나 근로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향후 정부가 면세자 축소 정책을 시행하려면 대통령의 말을 거슬러야 한다.

77년 7월 이후 40년째 10% 세율에 묶여있는 부가가치세 역시 정부는 당장 손대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김동연 부총리는“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모든 납세자가 영향을 받는다. 인기 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나랏돈으로 국민의 소득을 늘리겠다며 재원 마련의 문을 스스로 좁히면 결국 재정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세법개정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용 증세’라는 의심이 든다”며 “세수 효과는 미미하고 국가 재정 여력만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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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주요 세목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립적으로 설계하고, 경제활동과 성장에 최대한 충격을 덜 주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 개정은 정치가 앞에 서고 경제가 뒤를 따라가는 통에 면세자 비중 축소 등의 얘기는 못하고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집중한 세제 개편을 했다”고 말했다.

정해방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기획예산처 차관)는 “개방 경제인 한국의 상황을 비쳐보면 법인세는 국제적 수준에 맞추고, 대신 감면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며 “소득세는 모든 사람이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국민이 세금 사용처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세수 확보 차원에서 40년간 한번도 손대지 않은 부가세율 조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하남현ㆍ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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