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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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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KM-53.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에 방사한 수컷 반달가슴곰의 이름이다. 이 녀석은 지난 6월 지리산에서 80㎞나 떨어진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돼 생포됐다. 전파발신기를 달고 다시 풀려났지만 수도산으로 달아났고, 도로 붙잡혀왔다.

KM-53는 해묵은 논쟁에 불을 댕겼다. 곰이 등산객을 다치게 하거나 농가에 피해를 줄 거란 걱정 때문이다. 지리산 곰 47마리 중 28마리는 추적이 안 된다. 전파발신기 교체 시기를 넘겼거나 야생에서 태어나 발신기를 달지 못한 곰이다.

논란은 2001년 한 방송사와 환경부가 곰 복원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당시 방사했던 곰 네 마리는 지리산에 안착하지도 못했다. 2004년 복원사업이 재개됐지만 지리산 자체가 등산로로 조각조각나 있어 사람과 마주칠 우려가 제기됐다. 행동반경이 암컷은 40~60㎢, 수컷은 100~200㎢인데, 등산로로 둘러싸인 24개 조각의 평균 면적은 19.6㎢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곰 숫자를 50마리까지 늘리겠다는 목표에 매달렸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곰이 다니도록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 백두대간을 이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환경부 산하 자연환경국민신탁은 곰의 이동을 돕기 위해 2014년 지리산 사치재 부근 농지 6000여㎡를 매입했다. 환경부와 산림청은 도로로 끊긴 백두대간을 다시 잇는 생태통로를 꾸준히 설치했다.

물론 KM-53를 ‘탈주범’이라고 탓할 순 없다. 그동안 정부·시민단체가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복원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백두대간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샛길’로 엉뚱한 곳에 나타난 게 탈이었지만 말이다.

13년간 진행된 복원사업은 어느새 너무 멀리 와버렸다. 곰을 다 잡아들이자는 말도 하지만 간단하지 않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곰은 우리 국토의 희소한 동물 자원이자 한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당장은 곰을 추적할 수 있도록 인력·장비 보완이 시급하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반달가슴곰을 복원해 얻을 이익 대신 어느 수준까지 그 불편을 감수할 것인지, 레드라인이 어디까지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반달가슴곰 복원이야말로 공론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