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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서막인가…베네수엘라, 국제사회 비난에도 제헌의회 선거 강행

중앙일보

입력

남미 베네수엘라 집권 세력이 30일(현지시간) 개헌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하면서 정국이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며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를 바로잡겠다며 개헌 등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추진했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가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선거'라는 비판 속에서 30일(현지시간) 강행됐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가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선거'라는 비판 속에서 30일(현지시간) 강행됐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이 꺼낸 제헌의회 카드는 되려 역풍을 맞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이 선거를 ‘독재를 위한 절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제헌의회가 개헌은 물론 의회 해산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기구라서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개헌 위한 '제헌의회 선거' 30일 강행 #'독재 위한 선거'라는 국내외 비판 쏟아져. 반정부 시위 격화돼 #미국 트럼프 정부, 베네수엘라 석유 관련 제재안 검토중

현재 베네수엘라 의회는 167석 중 112석을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 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이번 선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후보를 내지 않았다. 반면 여권에선 545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에 5000명 넘는 후보를 냈다.

반정부 시위는 점점 격해지고 있다. 정부는 선거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설 시 징역 5~10년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고 정부군을 대거 투입했지만,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이번 선거 반대 시위로 최소 10명이 사망했으며, 여권 측 후보자가 괴한들의 총격에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4월 이후 반정부 시위에서 숨진 사람은 120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정부 측은 사망자가 정부군에 의해 숨진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어 갈등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점점 고조되는 갈등에 미국까지 나섰다.

미 국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민주주의 편에 서있다”며 “권위적인 마두로 정부에 강력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선거를 강행하면 미국은 강력한 경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지난 26일에는 선거를 밀어붙인 베네수엘라 전ㆍ현직 고위 관료 13명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제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CNN 등은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에 미국산 원유와 정제유 수출을 금지하는 등 추가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부국이었지만, 심각한 정치적 혼란으로 유정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미국에서 석유를 수입해 쓰고 있다.

마두로 정권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온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 또한 이날 트위터에 “마두로의 가짜 선거는 독재를 향한 단계”라며 “우리는 불법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베네수엘라 국민과 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미국은 1999년부터 2013까지 장기집권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와 오랜 반목을 빚어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2013년 당시 마두로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미 국무부 차원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해, 양국 간 갈등은 더 깊어졌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가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선거'라는 비판 속에서 30일(현지시간) 강행됐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가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선거'라는 비판 속에서 30일(현지시간) 강행됐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이번 선거를 비판하고 나선 건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뿐 아니다. 콜롬비아ㆍ페루ㆍ아르헨티나ㆍ파나마 등 다른 남미 정부도 이 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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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 가디언은 “베네수엘라는 지금 붕괴 위기에 있다”며 “정부는 모든 시위를 금지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심각한 사회 양극화에 있다”며 “빈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당시만 해도 엄청난 석유로 불평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듯 보였지만, 유가가 급락하며 정부의 약점이 드러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석유에만 의지해 국가 경제의 기본 골격을 튼튼히 하는 데 소홀했던 베네수엘라 정부가 총체적인 실패의 수렁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이 나라 국민 대부분은 식품과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격렬한 시위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마두로 정권의 의지는 쉽게 꺾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외신은 마두로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사실상 선거 참여를 강제하고, 저소득층에 식량 배급 등으로 투표를 독려했다고 보도했다. 투표 시간을 1시간 연장하기까지 했다. 가디언은 “많은 주민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정부 보조금이나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위협을 받았다”고 전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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