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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슈즈’ 만든 두 장인, 대통령 구두와 영부인의 ‘버선코 구두’도 이들의 휘어진 손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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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한 유홍식 명장(오른쪽)과 김정숙 여사의 버선코 구두를 만든 전태수 장인이 대통령 부부가 신은 것과 같은 신발을 손에 들고 있다. 김춘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한 유홍식 명장(오른쪽)과 김정숙 여사의 버선코 구두를 만든 전태수 장인이 대통령 부부가 신은 것과 같은 신발을 손에 들고 있다. 김춘식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제화장인 유홍식(69)·전태수(63)씨는 지난 5월 은밀한 출장에 나섰다. 이례적으로 일터를 벗어나 이들이 향한 곳은 청와대였다. 일주일 차이로 청와대에 들어간 두 사람이 발 치수를 잰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였다.

성수동의 두 ‘구두 대통령’ 인터뷰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구두 제작 #“대통령의 ‘시장표 양말’ 보고 놀라” #김정숙 여사는 공방에 깜짝 방문도 #굳은살 발 고려해 편한 신발 주문 #50년 넘게 수제화 만든 장인정신 #“구두처럼 정직한 정치해주길 바라”

한 달쯤 뒤, 유씨와 전씨는 TV에 나오는 대통령 부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국·독일을 순방하는 문 대통령은 유씨가 만든 신발을, 김 여사는 전씨가 만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유씨는 문 대통령의 정장 구두 6켤레를 만들었다. ‘한국의 미’를 뽐낸 김 여사의 ‘버선코 구두’는 여성화 전문인 전씨의 손에서 탄생했다.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은 대통령 부부를 위해 제작해준 것과 똑같은 신발들을 한 켤레씩 더 제작해 소장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은 대통령 부부를 위해 제작해준 것과 똑같은 신발들을 한 켤레씩 더 제작해 소장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27일 성수동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 1층 수제화 갤러리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구두를 50년이나 만들었는데도 밤잠을 설칠만큼 설렜던 기억”이라며 대통령 부부의 신발을 만든 지난 5월을 떠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미국 순방을 마치고 지난 2일 귀국하면서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이 신은 신발을 신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미국 순방을 마치고 지난 2일 귀국하면서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이 신은 신발을 신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유씨는 2013년 서울시의 수제화 명장 1호에 선정됐다.

“한 남성이 공방에 찾아와 ‘출장을 가실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출장은 안 나간다’고 하자 10분 정도 망설이더니 자신이 청와대 관계자임을 밝히면서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해 주시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유씨는 ‘퍼스트 슈즈’를 만들게 됐다.

전씨의 가게에도 젊은 여성 두 명이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선물한다면서 신발 여러 켤레를 신어보고 사진도 찍어 갔어요. 3일 뒤에 청와대 관계자가 찾아왔죠.”
전씨의 김 여사 구두 제작도 그렇게 시작됐다.

유씨는 대통령의 신발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나보다 낡은 구두와 저렴한 ‘시장표 양말’을 신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한 업체의 구두를 5년 넘도록 신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각·청각장애인들이 주축이 돼 운영했던 이 회사는 경영난으로 4년 전 폐업했다.

유씨는 “대통령은 멋에 있어서는 본인 만의 취향이 딱히 없어 보였는데, 에나멜 구두 한 켤레는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왔죠”라고 말했다.

유홍식 명장이 측정해 기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 사이즈가 적힌  계량지. 김춘식 기자 

유홍식 명장이 측정해 기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 사이즈가 적힌  계량지. 김춘식 기자 

대통령의 구두는 이탈리아 소가죽으로 제작했다. 유씨는 “가격은 한 켤레에 원래 60만~70만 원선이지만 해외 순방의 의미를 고려해 3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가죽으로 된 대통령 부부의 커플 등산화도 납품했다.

김 여사는 전씨에게 자신의 발에 박힌 굳은살을 보여주면서 “선거 기간에 하도 돌아다녀 생겼어요.발이 안 아프게 잘 부탁합니다”고 말했다.

구두 앞코를 버선코에서 본 딴 구두는 전씨의 대표 디자인이었다. “샘플로 가져간 버선코 구두를 본 여사가 옷의 기장을 고려해 5cm, 8cm 구두 굽 제작 아이디어를 냈지요.”

김 여사는 전씨의 가게를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완성된 신발을 직접 찾으러 온 것이었다. 전씨는 “경호 관계상 사전 연락없이 오셔서 무척 놀랐다”고 했다. 신발을 신어 본 김 여사는 흡족해하면서 다른 신발도 맞춰 갔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가 미국 순방 때 신은 버선코 구두는 한국의 미를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연합뉴스] 

김정숙 여사가 미국 순방 때 신은 버선코 구두는 한국의 미를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연합뉴스] 

유씨와 전씨는 “제작 기간은 보름 정도 걸렸고, 납품까지 완료한 후에야 두 발 뻗고 잤다”면서 웃었다.

두 사람은 성수동 거리에서는 문 대통령 부럽지 않은 ‘구두 대통령’으로 통한다.
장인으로서의 삶도 닮았다. 전남 광주가 고향인 유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출해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공부가 싫었다”는 그는 서울 명동의 한 구두 공장에서 1년 간 일하며 자신의 적성을 찾았다. 집에 돌아와 일주일 간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구두장이’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신발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 열흘 간 수백 번의 망치질을 한다. 13살 때부터 같은 망치를 사용하고 있다. 스승 천귀남(77)씨가 55년 전 손에 쥐어 준 이 망치는 그의 보물 1호다. 배우 최불암, 고두심씨 등도 유씨에게 신발을 맞췄다.

전씨는 대장장이였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다. 13살 때 구두를 처음 만졌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올라와 구두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는 “국내외 수제화·기성화들을 분해해 보면서 디자인을 독학했다”고 말했다. 한류스타인 가수 싸이의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유씨와 전씨는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구두 기술로 큰돈을 벌어 1990년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부도가 났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구두 기술 하나로 재기에 성공했다.

50년 간의 반복된 작업으로 손가락이 휘어진 두 장인은 “신발 한 켤레 한 켤레를 내가 신을 신발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요”라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자신들이 만든 신발을 신는 대통령 부부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서로를 마주보며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다.

“이 신발을 신고 서민들 자주 찾아다녀 주시고, 주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신발처럼 정직하게 정치를 해시주면 좋겠어요.”

장인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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