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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치료비·법률 비용 지원한다

중앙일보

입력

#1. 20대 여성 직장인 정모씨는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쓴다. 전 남자친구 김모씨가 얼굴에 낸 상처 때문이다.

"다른 남자 못 만나게" 얼굴 집중 폭행 #“토막살인 하겠다” 협박에 신고 못해 #서울시 이달 말부터 피해자에 금전 지원 #피해자 대응 메뉴얼도 제작해 배포 예정

김씨는 수시로 주먹을 휘둘렀다. 정씨의 과거 남자 관계를 캐물으며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다고 한다. “다른 남자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유였다.

참다 못한 정씨는 이별을 통보했지만 이후 김씨는 정씨의 집 앞까지 찾아왔다. “살해한 뒤 토막을 내겠다”는 위협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 대학생 박모(23)씨는 최근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함께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부모님에게 보낸다”는 협박을 받았다. 여기에 산부인과 질환도 의심돼 걱정이 태산이다. 주변의 시선과 비용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않고 망설이고 있다.

#3. 김모(38)씨는 지난달 남자친구에게 맞아 고막이 파열됐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생계 문제다. 남자친구가 자신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마트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최근 직장을 관뒀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데이트폭력 상담 전용콜’(02-1366)에 접수된 데이트폭력 피해 사례들이다. 피해 여성들은 공포심은 물론 사회생활과 생계까지 염려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서울시는 우선 이달 말부터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에게 신체적·정신적 치료 비용과 형사·민사 소송으로 발생하는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배현숙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은 “올해 안에 피해자 20~50여 명에게 비용 지원을 시작해 내년부터 대상 인원을 점차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데이트폭력은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 전용콜에 접수된 올 상반기 상담 건수는 66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253건)보다 2.6배로 늘었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5년 7692건에서 지난해 8367건으로 증가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건 중에는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도 467건에 달했다.

서울시는 이번 지원책에 법률 상담과 법적 증거 확보에 필요한 경비도 포함시켰다. 또 피해자의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다. 배 담당관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적절한 대처 방법을 모른다. 여기에 금전적인 문제까지 겪으며 피해 사실을 감추게 된다. 지자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한다. 10~60대 여성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심층 인터뷰한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고 보호도 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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