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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빼고 다 공유하는 중국 … 역시 사회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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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 중국 경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 하나를 꼽는다면? 폭발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공유경제 열풍일 것이다. 자전거와 우산은 물론 구찌 같은 명품 핸드백도 공유해 쓰는 중국의 공유경제 서비스 이용자 수는 지난해 6억 명을 돌파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하는 공유경제 규모가 2020년 10%를 넘어 2025년엔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중국 시장은 공유경제란 프리즘을 통해 봐야 할 것이다.

소유 아닌 나눠 쓰기 공유경제 #미국서 싹트고 중국서 꽃피워 #구찌 명품 핸드백도 공유하며 #사용하되 사지 않는 소비 양산

앞으로 중국 출장 갈 때는 딱히 위안화 환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을 경우 현금이 아닌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결제가 가능한 차량공유 서비스 ‘디디추싱(滴滴出行·중국판 우버)’을 부르면 된다. 가까운 약속 장소는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유 자전거로 이동한 뒤 자전거를 아무 데나 세워두면 돼 편리하다.

갑자기 현금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지나는 택시를 붙잡아 운전기사의 스마트폰에 QR코드를 이용해 송금하고 그 액수만큼의 현금을 받는 방법이 있다. 여름철 소나기라도 내리면 공유 우산을 사용하자. 잠은? 일회용 침구와 가재도구 등을 갖추고 QR코드를 스캔하면 문이 열리는 공유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싹이 튼 공유경제가 중국에서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공유경제란 제품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나눠 쓰는 협업 소비의 개념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펀샹(分享) 경제라 말한다. 중국국가정보센터가 발표한 ‘2017 중국 공유경제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공유경제 시장 규모는 3조4520억 위안(약 580조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103%나 성장했다. 공유경제 서비스 이용자 수도 6억 명 이상으로 전년 대비 1억 명 이상이 늘었다.

투자금도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스타트업 업계가 유치한 투자금 310억 달러의 대부분이 공유경제로 들어갔다. ‘공유’ 간판만 붙으면 묻지마 투자가 벌어질 정도다. 공유경제 관련 부문에서 일하는 인력만 우리 인구에 맞먹는 약 5000만 명에 달한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공유경제 서비스가 국가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중국은 어떻게 ‘공유경제의 천국’이 되고 있는 걸까. 크게 세 가지 요인을 봐야 한다. 첫째는 모바일 플랫폼의 편리성이다. 현재의 공유경제 서비스는 주로 임대와 협업 소비가 핵심인데 모바일 플랫폼이 급속한 소비 확산에 불을 지폈다. 스마트폰 결제 방식의 편리성으로 인해 중국에선 신용카드 단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가 창출되고 있다. 물품의 공동 구입과 협업 소비, 여행과 오락, 주거와 식사, 차량 이용 등이 모두 스마트폰 앱으로 쉽게 해결된다. 최근 2~3년 사이에 이뤄진 급격한 일로, 알리바바의 마윈(馬雲)과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등 두 명의 정보기술(IT) 거두가 이 같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공유 서비스를 확산시킨 둘째 요인을 중국인의 문화적 코드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서비스에서 친절과 예의를 따지지만 중국인은 실용성과 편의성을 우선한다. 불친절할지라도 중국은 실용적 편의성에서만큼은 한국에 훨씬 앞서 있다. 고가의 자동차도 브랜드보다는 기능의 편의성을 중시한다. 지역적인 문화 차별성도 존재한다. 북방에선 공동 구매를 통해 절약할 수 있는 상업적 서비스가 선호된다면 남방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주는 소비 문화가 더 확산되는 추세다. 창의성 있는 공유 서비스 모델이 남방에서 다양하게 실험되는 배경이다. 공유 농구공, 미니 노래방, 공유 우산 등이 그런 예다.

중국 공유경제의 발전을 북돋아 주는 셋째 요인은 중국 개혁의 순차적 적응성과 제도적 보완성이다. 중국의 개혁은 항상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또 제도적으론 안 되는 것만 정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적용한다. 그래서 ‘선허용, 후규제’라는 특징이 나온다.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행정지도로 단속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니 창의성이 발휘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의 장점은 일단 어떤 비즈니스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 공유경제의 확산은 대륙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우선 중국의 관시(關係)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둔 인적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모바일 플랫폼의 네트워크로 바뀌고 있다. 중국인의 일상적 소비 생활에도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마화텅 회장은 “자원 방치는 낭비다. 사용하되 구입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소비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구에서 발전한 ‘기프트 이코노미’가 중국에선 모바일 선물의 ‘훙바오(紅包) 이코노미’로 변했듯이 중국 특색의 소비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 공유경제 붐은 또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구조조정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생산에만 치우친 사회주의 공급경제 모델에 다양한 소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공유경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도 변화시킨다. 주주 중심과 이익 중심의 기업 가치가 이해 관계자 중심과 타인을 배려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기업 가치로 거듭날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전거 도둑으로 인해 중국의 공유 자전거 업체 두 곳이 문을 닫았고 거리에 뿌려진 공유 우산 30만 개가 사라지는 등 문제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가족 빼고 다 공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는 공유경제 바람은 예사롭지 않다. 이달 초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8개 부처가 합동으로 공유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의견을 낸 것은 중국이 이제 생산 관계의 변화보다는 소비 관계의 변화에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읽힌다.

아룬 순다라라잔 뉴욕대 교수는 공유경제가 사물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의 발전 등과 맞물려 새로운 경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핀테크 강국이 된 중국이 현재 발 빠르게 만들어가고 있는 ‘중국식 공유경제’가 중국의 모습을 크게 바꾸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반면 우리는 서울과 부산 등 각 자치단체에서 나눔카·물품공유센터 등 공유경제 서비스를 실험 중으로 이제 걸음마 단계다. 아직 관련법도 마련되지 않았다. 중국의 공유경제 비즈니스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어떻게 확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중국 시장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희문

한국동북아경제학회 회장과 중국시장포럼 회장(대한상의)을 역임했다. 대만 국립정치대와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중국 경제를 연구했고, 중국 런민(人民)대와 베이징(北京)대 경제과 초빙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유희문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