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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25% 땐 10대 기업 1조3827억 더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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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현행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익을 많이 거둔 기업에 대한 선별적 증세”라는 정부의 주장만큼 “대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표적 증세”라는 반론도 거세다.

국회 자료 토대로 추정해보니 #총 세수 증가분 2조9300억의 47% #부담 1위 삼성전자 4327억 늘어나 #법인세 세수 비중 12.8% OECD 3위 #재계 “기업 일방적 희생 강요 문제”

당장 추가로 법인세를 부담해야 할 상위 10대 기업의 실제 납부액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각 기업의 ‘과세표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법인세는 기업이 벌어들인 순익이 아니라 각종 비용과 세금 공제받을 금액을 제외한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산출하는데, 이는 기업이 공개하고 있지 않아서다. 순이익이 많더라도 각종 세금감면ㆍ공제를 거치면 실제 내야 하는 법인세는 적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신뢰할만한 자료는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3월 펴낸 ‘2017 경제재정수첩’이다. 각 기업의 재무제표와 신용평가업체 나이스평가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법인세 비용 상위 10대 기업이 2015년 낸 법인세를 계산했다. 본지가 이를 토대로 법인세 추가 부담액을 분석한 결과 법인세 최고세율이 25%로 올라가면 동일한 과세표준을 가정할 경우 10대 기업 전체의 추가 세 부담은 1조3827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들 10대 기업이 총 세수 증가분(2조9300억원)의 약 47%를 부담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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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액 1위는 삼성전자로, 법인세는 13.5%(4327억원) 더 늘어난다. 삼성전자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들어설 가전 공장 건설에 들이는 투자비용(3억8000만 달러)을 웃도는 금액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조(兆) 단위의 거액을 추가로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반도체 호황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부담액은 더 늘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차ㆍ한전ㆍSK하이닉스 등도 법인세 부담이 13% 이상 증가한다.

◇법인세율 인상시 상위 10대 기업 세부담 증가액 추정치(단위: 원)

◇법인세율 인상시 상위 10대 기업 세부담 증가액 추정치(단위: 원)

학계에서는 이처럼 특정 대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핀셋 증세’에 대해 상위 기업에 대한 세금 집중도를 더욱 높이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59만 개 신고법인 가운데 0.53%에 해당하는 3101개의 법인이 전체 법인세의 78.4%를 내고 있다. 기업의 절반 가량(47.3%)는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126곳 기업에 대해서만 세부담을 늘릴 경우 형평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자 증세’ 운운하면서 법인세 인상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은 몰라도 법인을 부자라고 분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특히 전세계적으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를 낮추는 추세인데, 법인세 인상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좀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기업들이 충분한 세부담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의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2.8%(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세번째로 높다. 한국보다 해당 비율이 높은 국가는 칠레(23.7%)와 뉴질랜드(13.5%)였다. 미국(8.3%)ㆍ영국(7.5%)ㆍ독일(4.7%), 프랑스(4.6%)등 주요 경쟁국은 이 비중이 10% 아래다. 특히 지난해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도 법인세수는 52조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기업들의 세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OECD 주요 국가의 법인세 비중(전체 세수 대비, 단위: %)

OECD 주요 국가의 법인세 비중(전체 세수 대비, 단위: %)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은 기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법인세 실효세율 부담이 줄여왔으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실효세율 부담이 늘어왔다”며 “법인세 인상이 단기적인 세수확보를 가능케 하겠지만 항구적인 재원 조달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법인세 인상 논란은 이번 정부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논의됐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이슈다. 법인세를 건드리면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ㆍ가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찬반이 팽팽히 맞서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찬성 측에서는 그간 법인세를 낮춰졌지만 투자 확대나 고용 증가같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을 들고 나온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기업들이 법인세가 낮은 해외로 이탈할 수 있고 기투자위축, 일자리 감소 같은 부작용을 우려한다.

정작 당사자인 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 초기인 탓에 입장 표명을 삼가며 몸조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세 저항’이 큰 면세자 축소나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 여건 상 반발이 어려운 대기업만 털어낸다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새 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추진을 위한 재원마련을 대기업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문제”라며 “특히 ‘초 대기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반대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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