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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 오른 마크롱 대통령의 제왕적 리더십…허니문 끝났나

중앙일보

입력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으로 제왕이라는 풍자가 나오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으로 제왕이라는 풍자가 나오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취임 두 달 만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긴축 재정을 추구하면서 국방예산을 삭감하려 하자 군 최고사령관인 합참의장이 ‘항명'의 취지로 사임한 데다, 교사들과 지방 정부도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대선과 총선 승리로 막강한 권력을 쥔 마크롱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의 올해 국방예산 8억5000만 유로(약 1조1000억원) 삭감 계획에 반발해 피에르 드 빌리에 합참의장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전격 사임한 것을 두고 그동안 마크롱의 기세에 눌려있던 좌우 정치권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대선에서 경쟁했던 극우파인 마린 르펜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인물을 잃었다"며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하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베르나르 아코이 공화당 사무총장도 "전례가 없는 일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극좌인 프랑스 앵슈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에릭 코케렐은 “우리는 더이상 민주주의를 하는 게 아니다"고도 주장했다.
 프랑스 5공화국 출범 이후 군 최고 장성인 합참의장이 대통령과 뜻이 달라 자진 사퇴한 것은 처음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후임으로 말리에서 유럽연합 군사 훈련을 지휘했던 프랑수아 르코앙트르(55)를 신임 합참의장 후보로 지명했지만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마크롱의 긴축 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고등교육 및 연구기금으로 책정된 3억3100만 유로에 대한 예산집행을 취소하기로 하자 교사들이 반발할 조짐이다. 마크롱 정부는 또 지자체들에게 오는 2022년까지 130억 유로의 예산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프랑수아 바루앵 프랑스 시장연합 대표는 “우리는 이미 줄일 만큼 허리띠를 졸랐다"고 반발했다.
 논란이 가열되면서 마크롱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BVA의 17~18일 조사 결과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54%로, 지난달 62%에 비해 낮아졌다. BVA 관계자는 “유권자들과 정치적 허니문이 끝나고 현실이 시작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비판 여론이 점점 커지는 눈덩이 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마크롱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선거 시스템에 따라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프랑스는 선거에서 1차 투표와 2차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마크롱과 그의 중도신당 연합은 대선 1차에서 24%, 총선 1차에서 32.3%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투표율도 낮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유권자에게 얻은 표는 과반에 훨씬 못미친다. 하지만 결선투표 덕에 행정부를 장악하고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더욱이 프랑스의 기존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이 맥을 못추면서 사실상 견제할 강한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카를로 잉베르니치아세티 뉴욕시티대 교수는 “마크롱은 의원 수를 3분의 1가량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의회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정복하려는 시도에 가깝다"며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마크롱 모델’은 당면 과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또 “프랑스의 현 선거제도는 5공화국 출범을 맞아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설계했는데, 민주적 대의제를 포기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얻기로 한 것"이라며 “강한 야당이 없이 어부지리를 얻은 지도자가 드라이브를 걸 경우 특정 집단의 이익은 외면하게 되고 사회적 갈등은 수면 밑에서 더욱 끓어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왕적 행보에 대한 풍자와 조롱도 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39세의 마크롱이 군주처럼 행동한다며 ‘소년 왕자'나 새로운 ‘태양왕',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 '주피터'에 비유되고 있다.
 마크롱은 지난 3일 베르사유궁에서 상ㆍ하원 의원들을 소집해 90분간 연설을 했는데 이후 태양왕(Le Roi Soleil)과 발음이 비슷한 ‘수면 왕'(Le Roi Sommeil)이란 별칭을 얻었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궁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하려 했지만 지루한 연설로 프랑스를 잠들게 했다는 풍자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로랑 조프랭 편집장은 “마크롱 대통령은 주피터처럼 높은 곳에서 구름에 싸인 채 지시를 한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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