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타타르로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타타르로 가는 길/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순호 옮김/르네상스, 2만원

지난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탐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은 여행기 형식을 빌어 최근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인 지은이가 비행기보다는 버스나 기차나 배로, 지식인보다는 보통 사람들을 상대로 발품 팔아 얻은 정보들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의 무리가 있었으며 세계는 희망보다 야망이 넘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악과 야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시각에는 부시의 논리가 그대로 느껴져 개운치 않다.

저자의 세계관과는 별도로, 우리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잘 모르고 있고 이해가 부족한 지역을 언론인 출신답게 꼼꼼하게 들여다본 내용만은 상당히 유익하다.

카플란의 여행길은 터키와 시리아, 이스라엘 등 중동과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이어진다.

카스피 해 송유관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 시리아와 그루지아의 정치 혼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경제부진 등 이 지역의 어두운 현실이 카플란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흐르게 한 것 같다.

"공산주의가 붕괴함에 따라 민주주의가 여기 저기서 발흥하고 세계화 운운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국가에게만 행복한 일이다. 서양인들은 코스모폴리탄적인 가치관을 민족이나 종교보다 더 우위에 둘지 몰라도 제3세계에서는 민족 및 종교적 갈등이 더욱 증폭되어 주민의 삶은 오히려 더욱 위험스럽고 비참해지고 있다."

카플란은 또 "서양의 언론마저도 세계화의 분위기에 빠져 지내는 바람에 제3세계에 대한 오해가 더욱 깊어질 우려가 있다"면서 "미국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천연자원을 놓고 각축을 벌일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은이가 전하는 시리아의 실상은 우리의 상식을 많이 깬다. 예컨대 우리도 서구 언론에 편향된 탓인지 시리아라고 하면 먼저 테러를 지원하는 회교국가를 떠올린다. 이라크와 비슷한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카플란이 본 시리아는 많이 다르다. 국민들의 민족적 배경과 종교적 배경이 아주 다양하다. 엘리트와 군 장교를 많이 배출하는 종파가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라는 보고도 생소하다.

카플란이 정치적 혼란을 겪는 나라들을 둘러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새롭게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다. 이들 나라로서는 국가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