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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교육청, 숭의초 감사 발표 때 “대기업 회장 손자 현장에 없었다”는 증언 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울 숭의초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던 서울시교육청이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대기업 회장 손자 A군이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중요한 증언을 확보했지만 정작 감사 결과 발표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밝혀졌다. 증언은 학폭 사건이 일어난 수련원의 지도사가 한 것으로 폭력 사건 발생 당시 A군은 사건이 벌어진 방 안에 있지 않았고 밖에 나와 있었다는 내용이다.

수련원 지도사 “밖에서 놀고 있었다” #초기진술서에 해당 학생 언급 없어 #교육청 “재심 영향 줄까 뺐다” 인정

18일 서울시교육청과 숭의초등학교 등에 따르면 숭의초 3학년 수련회(4월 20~21일)가 진행됐던 경기도 지역 한 수련원의 지도사 김모(25)씨는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감사팀에 사건 당일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진술하고 확인서도 냈다.

당시 확인서에는 “입소식을 마치고 다음 프로그램에 모이기 전 숙소에서 짐 정리하는 시간에 2~3명 정도는 숙소 앞에 나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A군인 걸로 알고 있다. (중략)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한 명이 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고 있는데 숭의초 여선생님이 오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신 걸로 기억한다”고 적혀 있다. 이불을 덮은 채 혼자 놀던 학생을 동급생들이 플라스틱 야구방망이와 무릎 등으로 집단폭행했다는 사건과 관련한 확인서다. 김 지도사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현장에 급히 들어온 여선생님(담임교사)이 A군에게 ‘방에서 애들이 싸우는데, 반장인 너는 왜 밖에서 놀고 있었느냐’고 혼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명확한 확인을 위해 수련회 당시 촬영된 A군의 사진을 김 지도사에게 보냈고 “당시 밖에 나와 있었던 학생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같은 내용은 사건 초기 숭의초가 폭력 사건이 벌어진 숙소를 사용한 학생 9명을 대상으로 받은 진술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숭의초 관계자는 “7장의 초기 진술서(9장 중 2장은 분실)에는 가해 학생으로 일관되게 3명만 지목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해 학생으로 확인된 3명이 피해 학생에게 쓴 사과 편지에도 ‘○○이가 이불 위에서 장난을 치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그랬어. 미안해’ 등과 같이 구체적인 정황이 적혀 있지만 A군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전창신 감사팀장은 “감사 과정에서 관련 정황을 다 알아봤지만 재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감사 결과 발표에서는 김 지도사의 진술 내용을 뺐다”고 해명했다. 또 “교육청 감사의 목적은 학교가 학폭 절차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라 결과 발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숭의초 학교폭력 사건은 피해 학생 학부모의 요청에 따라 19일 오후 6시30분 서울시 학교폭력지역대책위원회에서 재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통상 재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고 처분 등을 판단하게 된다.

숭의초 관계자는 “교육청이 A군의 폭력 가담 여부는 재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함구하더니, 이번 감사와 별개 사안인 ‘2차 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A군이 가해자’라고 단정 지어 발표한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밝힌 2차 폭행은 수련회 이튿날인 21일 새벽 1~2시쯤 A군이 취침하지 않고 떠드는 학생 2명을 “빨리 자라”며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로 때렸다는 사건이다.

학교 측은 “반장인 A군이 ‘학생들을 빨리 자게 하라’는 교사의 지시를 받고 한 것으로 피해 학생 학부모가 학폭위 개최를 원치 않았고,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합의가 이뤄져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숭의초가 A군 학부모에게 불법 유출했다는 학폭 관련 자료도 논란거리다. 시교육청은 감사 결과 발표 당시 “숭의초 생활지도부장이 A군의 학부모에게 학폭위 회의록과 진술서를 e메일과 휴대전화 사진파일로 전송한 것은 학폭법의 ‘비밀누설금지’ 조항에 어긋난다”며 생활지도부장과 교장·교감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A군 학부모에게 제공된 자료는 A군 본인의 진술서와 학폭위 회의록뿐이다. 전창신 감사팀장은 “본인 자녀의 진술서라도 학부모에게 공개할 때는 학교장의 의견서와 결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폭력 전문인 정수인 변호사는 “대다수 학교에서 학부모가 방문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회의록이나 자녀 진술서 복사본을 제공하고 있다”며 “수사 의뢰까지 한 건 과잉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홍승민 변호사도 “일반적으로 학폭위가 진행되면 학부모 커뮤니티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이 파다하게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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