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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교육청 숭의초 학폭 감사 때, 재벌 손자 없었다는 증언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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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사건으로 숭의초는 서울교육청의 특별감사까지 받았다. [중앙포토] 

학교 폭력사건으로 숭의초는 서울교육청의 특별감사까지 받았다. [중앙포토]

 서울 숭의초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던 서울시교육청이 가해자 중 한명으로 지목된 대기업 회장 손자 A군이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중요한 증언을 확보했지만 정작 감사 결과 발표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기업 회장 손자, 폭행 현장에 없었다" 목격자 증언 나와 #"그 애가 숙소 밖에서 놀 때, 방 안에서 '얘 울어요' 소리" #목격자 "시교육청 감사팀과 통화하고 확인서도 제출" #교육청 감사 결과 발표하며 증언과 확인서 언급 안해 #교육청 "가·피해 정황은 재심 영향 고려해 뺐다" 인정 #숭의초 학교폭력 사건,19일 재심서 다시 가려질 예정

 증언은 학폭 사건이 발생한 수련원의 지도사가 한 것으로 폭력사건 발생 당시 A군은 사건이 벌어진 방 안에 있지 않았고 밖에 나와 있었다는 내용이다. 시교육청은 감사 과정에서 지도사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를 파악하고 확인서까지 받았지만 감사 결과 발표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18일 서울시교육청과 숭의초등학교 등에 따르면 숭의초 3학년 수련회(4월 20~21일)가 진행됐던 경기도지역 한 수련원의 지도사 김모(25)씨는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감사팀에 사건 당일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진술하고 확인서도 냈다.

 당시 확인서에는 "입소식을 마치고 다음 프로그램에 모이기 전 숙소에서 짐 정리하는 시간에 2~3명 정도는 숙소 앞에 나와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A군인걸로 알고 있다. (중략)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한명이 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고 있는 데 숭의초 여선생님이 오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신 걸로 기억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불을 덮은 채 혼자 놀던 학생을 동급생들이 플라스틱 야구방망이와 무릎 등으로 집단 폭행했다는 사건과 관련한 확인서다.

숭의초 3학년생들이 수련회를 갔던 경기도의 한 수련원. 문제가 된 폭력사건이 벌어진 곳은 가운데 방(빨간 동그라미 표시)이다. 오른쪽방은 여교사 숙소로 사건 당시 담임 교사가 머무르고 있었다. 수련원의 지도사는 사건 당시 A군이 방 밖에서 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진 숭의초]

숭의초 3학년생들이 수련회를 갔던 경기도의 한 수련원. 문제가 된 폭력사건이 벌어진 곳은 가운데 방(빨간 동그라미 표시)이다. 오른쪽방은 여교사 숙소로 사건 당시 담임 교사가 머무르고 있었다. 수련원의 지도사는 사건 당시 A군이 방 밖에서 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진 숭의초]

 김 지도사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현장에 급히 들어온 여 선생님(담임교사)이 A군에게 '방에서 애들이 싸우는데, 반장인 너는 왜 밖에서 놀고 있었냐'고 혼내기도 했다"며 "서울시교육청에서 전화가 와서 당시 상황을 다 얘기했고 확인서도 보냈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보다 명확한 확인을 위해 수련회 당시 촬영된 A군의 사진을 김 지도사에게 보냈고 "당시 밖에 나와 있었던 학생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같은 내용은 사건 초기 숭의초가 해당 폭력사건이 벌어진 숙소를 사용한 학생 9명을 대상으로 받은 진술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숭의초 관계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서 받은 7장의 초기 진술서(9장 중 2장은 분실)에는 가해학생으로 일관되게 3명만 지목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해학생으로 확인된 3명이 피해학생에게 쓴 사과편지에도 '○○이가 이불 위에서 장난을 치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그랬어. 미안해' 등과 같이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이 적혀있지만 여기서도 A군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숭의초 관계자는 "시교육청 감사팀에 모든 상황을 다 설명했는데도 정작 12일 감사 결과 발표에서는 다 빠졌고, 학교가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A군을 감쌌다는 의혹을 기정 사실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이 12일 오후 시교육청 브리핑룸에서 숭의초의 학교폭력사건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이 12일 오후 시교육청 브리핑룸에서 숭의초의 학교폭력사건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시교육청 전창신 감사팀장은 “감사 과정에서 관련 정황을 다 알아봤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재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감사 결과 발표에서는 김 지도사의 진술 내용을 뺐다”고 해명했다. 또 “교육청 감사의 목적은 학교가 학폭 절차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라 결과 발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숭의초 학교폭력 사건은 피해학생 학부모의 요청에 따라 19일 오후 6시 30분 서울시 학교폭력지역대책위원회에서 재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통상 재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고 처분 등을 판단하게 된다.

 숭의초 관계자는 “교육청이 문제가 된 폭력 사건에 대한 A군의 가담 여부는 재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함구하더니, 이번 감사와 별개 사안인 '2차 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A군이 가해자'라고 단정지어 발표한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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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청이 밝힌 2차 폭행은 수련회 이튿날인 21일 새벽 1~2시경 A군이 취침하지 않고 떠드는 학생 2명을 “빨리 자라”며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로 때렸다는 사건이다.

 학교측은 “반장인 A군이 '학생들을 빨리 자게 하라'는 교사의 지시를 받고,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를 들고 떠드는 학생들을 쿡쿡 찌르며 '얼른 자라'고 말한 것"이라며 "피해학생 학부모가 학폭위 개최를 원치 않았고,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합의가 이뤄져 해결된 사안”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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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의초가 A군 학부모에게 불법으로 유출했다는 학폭 관련 자료도 논란거리다. 서울시교육청은 감사결과 발표 당시 "숭의초 생활지도부장이 A군의 학부모에게 학폭위 회의록과 진술서를 e메일과 휴대전화 사진파일로 전송한 것은 학폭법의 '비밀누설금지' 조항에 어긋난다"며 생활지도부장과 교장·교감 등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또 A군의 어머니가 피해학생의 진단서 날짜나 다른 학생 진술서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더 많은 자료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A군 학부모에게 제공된 자료는 A군 본인의 진술서와 학폭위 회의록뿐이다. 학교측은 "학폭위 회의록은 A군의 어머니가 정보제공신청 절차를 거쳐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학부모가 자녀인 A군의 진술서를 열람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휴대전화로 찍어 보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창신 감사팀장은 "본인 자녀의 진술서라도 학부모에게 공개할 때는 학교장의 의견서와 결재를 거쳐야 한다"며 "생활지도부장이 임의로 판단해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전송한 것은 지나친 특혜 제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교폭력 전문인 정수인 변호사는 "대다수 학교에서 학부모가 방문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회의록이나 자녀 진술서 복사본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수사의뢰까지 한 건 과잉대응"이라고 지적했다. 홍승민 변호사도  "일반적으로 학폭위가 진행되면 학부모 커뮤니티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이 파다하게 퍼져나간다. 학부모가 다른 학생 진술서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료가 유출됐을 거라 추정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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