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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북 제안 언론 이용한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의 ‘7·6 베를린 구상’를 이행하기 위한 정부의 17일 대북 제의는 언론을 통한 공개제의란 형식을 택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과 김선향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9시 국방부와 한적 본사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군사당국회담(21일)과 남북적십자실무회담(8월1일) 개최를 각각 제안했다. 통상 남북 간에 회담 제의는 판문점 채널이나 대면 접촉을 통해 전화통지문과 합의문을 작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은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서 차관과 김 직무대행의 제의 2시간 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기자회견을 열어 북측의 호응을 촉구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전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조 장관은 "북측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전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조 장관은 "북측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에 반발한 북한이 판문점에 설치돼 있는 전화와 팩스에 응하지 않는 방법으로 채널을 닫았다”며 “대북 제의를 위해 최근에도 수시로 유선접촉을 시도했지만 북측의 응답이 없어 정부 관련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언론에 발표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류 중 구조한 북측 어민을 송환하기 위한 계획을 북측에 통보할 때에도 채널이 막혀 있어 판문점에 근무 중인 유엔군 군사정전위 관계자가 확성기를 이용해 알렸다”며 “하지만 (현 정부 들어) 한반도 문제를 한국이 주도하기로 한 상황에서 남북대화 문제를 유엔 측 확성기를 통해 연락하는 게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데다, 북측의 접수 여부도 확인하기 어려워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한국과 외신들의 언론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있고, 재외공관에서도 관련 동향을 수시로 평양에 보고하는 만큼 언론 기자회견 방식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설명이다.

정부,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논의 위한 적십자회담 패키지 제안 #현재 남북간 협의 채널 전무, 북측이 모니터링하는 언론 택해 #북이 외면하기 어려운 군사당국회담과 꺼리는 이산가족 상봉 연계 #조명균 통일부 장관 "북,조속히 호응해 나와야"

무엇보다 정부가 군사 문제와 인도주의 문제를 동시에 제안하는 이례적인 방식, 즉 패키지 제안을 한 것을 두고는 북측의 회담 수용을 위한 명분 제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고위급회담이나 장관급회담에서 여러 사안을 동시에 타결하는 결과물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이날 처럼 각각 다른 회담을 패키지로 제의한 건 처음이다.
김연철 인제대(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은 정치·군사문제를 해결한 뒤에 사회·문화·인도적 분야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며 “북한의 관심사인 사안(군사)을 제안함으로써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만 제안할 경우 북한이 쉽게 거절할 가능성이 큰 만큼 두 분야를 동시에 제안했다는 분석이다. 적십자회담에 한적 사무총장등 3명이 나갈 것이라고 구체화한 것과 달리, 군사당국회담의 경우 날짜(21일)를 제외한 ‘급’과 안건을 북측에 일임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조 장관은 “그동안 남북 간의 군사문제를 논의한 과거 사례를 감안해 형식적인 면에서는 오픈해서 북한에 제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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