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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류샤오보 추모 물결

중앙일보

입력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교도소 밖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국의 반(反)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61)가 13일 숨을 거두자 전세계적으로 추도의 물결이 번지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의 애도 성명이 잇따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깊이 슬퍼하고 있다. 유족과 그의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류샤오보 부인 류샤(劉霞)를 비롯해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충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중국 정부는 류샤의 희망에 따라 그를 연금에서 풀어주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성명을 내고 “시인이자 학자이며 용감한 운동가였던 류샤오보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데 삶을 바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부인 류샤와 가족, 친구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세계 지도자들 성명,추모와 함께 '중국 책임론'거론 #뉴욕타임스 사설서 "리더들,시진핑 눈치만 봐"비판 #일본 아사히 "중국 당국, 유족에게 시신 화장 요구" #백악관 사이트선 중국 대사관앞길 '류샤오보길'청원

류샤오보에 대한 추도는 중국 당국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던 노벨상 위원회는 13일 밤 성명을 내고 “류샤오보의 이른 죽음에 중국 정부는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위원장과 도날드 투스크 유럽의회 의장은 애도 성명에서 “최근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희망을 존중해 독일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을 촉구했으나 (중국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유감이다”라며 “유럽연합은 중국에 모든 양심수를 석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등 주요 외신들은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제사회의 소극적 대응을 꼬집었다.
NYT는 사설에서 "류가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현대 중국과 그 지도부의 두려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핵무기를 통제하고 국제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한 용기 있는 양심적인 남성이 옹호하는 민주적 사고에 대해서는 듣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지도자들이 인권에 관한 시진핑 주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린 채 류샤오보가 사망할 때까지 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 워싱턴 중국 대사관 앞 거리 이름을 류샤오보 도로로 바꿔 중국의 자유와 민주화에 공헌한 그를 추모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한달 안에 1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미국 행정부는 대응을 내놔야 한다. [사진=백안관 캡쳐]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 워싱턴 중국 대사관 앞 거리 이름을 류샤오보 도로로 바꿔 중국의 자유와 민주화에 공헌한 그를 추모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한달 안에 1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미국 행정부는 대응을 내놔야 한다. [사진=백안관 캡쳐]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은 13일 오후 9시(현지시간) 경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사법국 사이트를 통해 타전됐다.
류샤오보의 주치의인 종양내과 의사 텅웨어(滕月娥)는 “오후 5시 35분 류샤오보는 부인 류샤와 형 류샤오광(劉曉光), 동생 류샤오쉬안(劉曉喧) 등 가족에 둘러싸인 채 숨을 거둘 때는 평안한 표정이었다”며 “그는 아내에게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류샤오보의 시신은 선양의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홍콩 명보는 이날 오후 7시 경 병원에서 선양 장례식장 명의의 차량 한 대가 앞 뒤로 여러 대의 승용차의 호위를 받은채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이와관련, 일본 아사히 신문은 14일 "중국 정부가 류샤오보의 시신을 바로 화장하고 유해를 바다에 뿌릴 것을 유족에게 요구했지만, 유족은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밤 중국 당국이 시신 화장 등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자 유족들은 "유골과 유해는 돌려주길 바란다. (이는) 우리들의 권리"라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중국 당국은 중국 국내에 류샤오보의 묘가 생기면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몰려들까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편 미국 백악관의 청원사이트에선 워싱턴 D.C 주미 중국대사관 앞 길의 이름을 ‘류샤오보로(路)’로 바꾸자는 청원이 시작됐다. 지난 2014년엔 주미 중국대사관 앞에 위치한 연방정부 소유의 ‘국제광장’을 ‘류샤오보 광장’으로 바꾸자는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우려한 오바마 행정부는 해당 결의안을 최종 부결시켰다.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전한 자유아시아방송의 그래픽. 류샤오보가 2009년 법정에서 남긴 최후진술의 한 구절을 담았다. 당시 류샤오보는 “내 이후로 발언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RFI]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전한 자유아시아방송의 그래픽. 류샤오보가 2009년 법정에서 남긴 최후진술의 한 구절을 담았다. 당시 류샤오보는 “내 이후로 발언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RFI]

중국 외교부의 겅솽(耿爽)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우리는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며 "중국은 법치 국가이고 범죄자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며, 법치 국가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법률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브리핑에선 “타국은 중국의 사법주권을 존중하고 개별 사건을 이유로 중국 내정 간섭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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