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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수사 대신 '쿠션수사'…검찰, 지난 정권에 칼날 겨눌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감사원의 면세점 사업자 선정 비리 감사와 국정원의 적폐청산 TF 출범 등이 잇따라 지난 정부의 비리 의혹을 적발하고 있다. 각 기관이 지난 정부의 이권 사업과 권력형 비리 의혹을 파헤치면서 자연스레 사정 정국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두 사건 모두 결국 검찰로 넘어가 '본 게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 댓글사건 조사 #감사원, 면세점 선정 비리 감사 발표 #이명박, 박근혜 정권 향해 수사 가능성

외형상으로는 감사원과 국정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검찰은 '수동적으로' 이어받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쿠션 사정’이라는 해석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쿠션(cushion)은 당구공이 부딪치는 당구대의 가장자리 면이다. 당구공이 쿠션에 튕겨 목표물에 도달하듯, 검찰이 타 국가기관들의 수사 의뢰나 고발 등을 토대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에 접근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경우 과거 논란이 됐던 표적 수사와는 다른 패턴으로 수사에 착수한다는 특징이 있다. 표적 수사는 ‘대통령(청와대) 하명→법무부 장관 지시→검찰의 수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치권의 의지와 검찰동일체가 결합하면서 정권 초기에 막강한 사정 바람을 일으켰다. 동시에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쿠션 사정은 다른 국가기관이 먼저 나선 뒤 검찰에 고발과 수사 의뢰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국가 기관들이 검증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적폐청산’이나 ‘이권 개입’ 등은 대부분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연관돼 지난 정부의 실세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

방법론은 다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하고 있는 ‘적폐 청산’ 기류와 맞물려 강력한 사정 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 진행될 검찰 수사 역시 과거 정권의 실세들, 혹은 전직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정원 입구 모습.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정원 입구 모습. [연합뉴스]

앞서 국정원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13개 리스트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국정원 댓글, 문화계 블랙리스트,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의혹 등 대부분 국정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 논란과 연결된 사건들이다.

검찰에 당시 수사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다 좌천된 경험이 있다. 그가 국정원에 다시 칼날을 겨냥하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감사원은 지난 11일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작은 천홍욱(57) 관세청장과 신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롯데에 불이익을 준 혐의로 고발된 전ㆍ현직 실무자들에 대한 수사다.

천 청장은 취임 직후 최순실씨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칼 끝은 당시 청와대 윗선이나 박 전 대통령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을 늘리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안종범(58)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연관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감사원 발표 다음날 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에 사건을 배당했다. 특수1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씨가 얽힌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부서다.

11일 면세점 사업자 선정 감사결과를 브리핑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박찬석 감사국장. [뉴시스]

11일 면세점 사업자 선정 감사결과를 브리핑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박찬석 감사국장. [뉴시스]

감사원은 현재 4대강 사업의 4차 조사에도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 대한 정책 감사를 지시한 결과다.

고(故) 백남기씨의 사망 진단서 논란이 불거진 서울대병원 감사도 진행 중이다. 백씨가 사망했던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의 살수차 운용과 관련된 논란들도 수사 선상에 오를 전망이다.

쿠션 사정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야권에선 “표적수사와 무늬만 달리했을 뿐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정치 보복 성격의 수사”란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는 사건 별로 공정한 원칙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13개 조사 리스트


북방한계선(NLL)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국정원 댓글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헌법재판소 사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박원순 제압 문건, 좌익효수 필명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뒷조사, 추명호 6국장 비선보고, 극우단체 지원,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해킹프로그램 통한 민간인 사찰,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감사원 주요 감사 리스트


①박근혜 정부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 비리 의혹 →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배당
②4대강 사업 4차 감사→ 정책결정 과정, 건설공사, 수질 문제와 성과분석
③서울대병원 감사→ 고(故) 백남기 씨 사망 진단서 수정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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