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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의정부고 SNS 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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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은혜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은혜 EYE24 기자

정은혜 EYE24 기자

10일 오후 8시 중앙일보 페이스북으로 경기도 의정부고 학생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보해도 되나요’라고 조심스레 물은 뒤 이날 있었던 졸업사진 촬영 현장의 수십 장면을 보냈다. ‘많이 퍼뜨려 주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배우 유아인·마동석, 가수 김건모 모자(母子), ‘수박맛 바’, 인형뽑기 등을 패러디한 분장 사진들이었다.

의정부고는 해마다 이런 졸업사진으로 화제를 일으켜 온 학교다. 단순히 졸업식 이모저모를 담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이슈를 반영한 패러디 의상을 입고 이색 기념사진을 찍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커플,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딸 유담씨도 패러디 대상이 돼왔다.

하지만 올해 의정부고는 학생들에게 졸업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지 못하게 했다. 학교 측은 그 배경 설명에 말을 아꼈다. 다만 “근래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굵직한 이슈가 너무 많아 학생들의 표현이 자칫 정치색을 띨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같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도 의정부고는 학생들의 졸업앨범 SNS 전파를 통제하고 일부 사진만 공개했다. [사진 의정부시]

경기도 의정부고는 학생들의 졸업앨범 SNS 전파를 통제하고 일부 사진만 공개했다. [사진 의정부시]

학교의 통제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학교 조치보다 더 순발력 있게 사진을 퍼뜨렸다. 언론 플레이도 할 줄 알았다. 사진을 공개한 한 학생은 “나는 이제 교무실로…(끌려가겠지요)”라는 익살 멘트도 남겼다. 학생들은 학교의 ‘과도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이벤트를 일궈냈다.

학교 측 관계자는 “‘학생들이 뭘 안다고 정치인 분장을 하도록 놔두느냐’는 항의가 외부에서 들어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분명 고충이 많을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우려가 학생들의 자생적·창의적 활동을 억제할 정도의 명분이 된다고 볼 수 있을까. SNS에서 화제를 일으켜보려는 의욕에 대해 학교가 SNS 공유를 막는다면 ‘의정부고 졸업사진’이라는 흥미로운 온라인 아이템이 사장될 것이다.

만일 학교 걱정처럼 비교육적인 정치 구호가 늘어날 경우 스승이 나서 해당 학생을 올바르게 인도하면 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청소년을 위한 산 교육이고 국민이 기대하는 시민교육일 것이다. 의정부고는 지금이라도 학생들에게 졸업사진을 자유롭게 창작하고 공개할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고교생에게 투표권까지 주는 나라가 꽤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정은혜 EYE24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