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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법 시행 2주년…교사 절반 법 존재도 몰라

중앙일보

입력

인성교육진흥법은 2014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제정됐다. 이듬해 7월부터 전국 1만2000여개 초중고교에서 시행됐지만 2주년을 앞둔 현재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인성교육진흥법은 2014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제정됐다. 이듬해 7월부터 전국 1만2000여개 초중고교에서 시행됐지만 2주년을 앞둔 현재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인성교육진흥법이요? 주변 교사 중에 그런 법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던데요.”(경기도 김포시 A중 박모 교사)
“중요한 건 알지만 별도 예산이 있거나 정책적으로 강조되는 것도 아니어서 신경 쓰기 어려워요.”(서울 서초구 B고 교장)

학교에 '인성교육부' 만들고선 학생 두발 단속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바리스타 등 직업체험 #인성교육 안 되는 이유에 "입시위주 교육환경" #60조 교육예산 중 인성교육 예산은 6억5000만원 #"국회서 만장일치 법 제정,교육부는 실행의지 없어" #"주입식 윤리·도덕 아니라 시민역량 키우는 교육돼야"

인성교육진흥법이 오는 21일로 시행 2주년을 맞지만,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될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해 제정됐다. 그러나 입시교육 등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학교 현장에선 인성교육이 외면받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C고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인성교육부’라는 이름의 부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핵심 업무는 ‘인성교육’이 아니라 두발 단속 등 ‘문제 학생’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마저도 올해는 안전교육이 강조되면서 ‘안전생활부’로 간판이 바뀌었다. 이 학교 이모(48) 교사는 “인성교육부든 안전생활부든 이름만 달라졌을 뿐 하는 일은 똑같다, 학생들을 규제하고 징계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의 A중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진로상담부가 인성교육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학교 측이 1학기 인성교육 활동으로 제시한 ‘자아존중감 회복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쿠키 만들기, 바리스타 되어보기 등 진로체험 행사가 대부분이다. 이 학교 박모 교사는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는데 활동 내용을 보면 이게 왜 인성교육인지 나조차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자료: 한국교총(6월30일~7월7일 교원 598명 조사)

자료: 한국교총(6월30일~7월7일 교원 598명 조사)

본지와 한국교총이 공동으로 교사 598명에게 인성교육에 관해 물어보았다. 절반가량(46%)이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돼 시행 중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특히 62%는 법에 따라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취지와 중요성엔 공감하지만 정작 법 적용 대상의 태반이 모르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고 말했다.

인성교육이 외면 받는 이유는 뭘까. 교사들은 첫 번째 이유로 입시위주의 교육환경(51.3%, 중복응답)을 꼽았다. 권영부 서울 동북고 교사는 “경쟁 중심의 입시 교육 위주인 상황에선 대입과 관계 없는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현실을 도외시 한 정책 중심의 인성교육 추진’(48%)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고교 부장교사는 “교육부가 낸 지침에 따라 흉내는 내고 있지만 내실 있는 인성교육보다는 보고서 작성이나 보여주기식 행사처럼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자료: 한국교총(6월30일~7월7일 교원 598명 조사, 중복응답)

자료: 한국교총(6월30일~7월7일 교원 598명 조사, 중복응답)

주무부처인 교육부의 의지 부족도 문제다.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을 주도했던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법을 제정했는데 정작 교육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말로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면서도 사실상 입시만 중시하는 관료들의 의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교육부 전체 예산(60조원) 중 순수 인성교육사업으로 책정된 국고 예산은 6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해(5억원)보다 1억5000만원이 늘어나긴 했다. 인성교육 업무는 당초엔 별도의 전담 부서로 두기로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인성예술체육교육과에 이 업무가 맡겨졌는데 전담 공무원은 과 전체 인원 13명 중 6명뿐이다.

정부의 인성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인성교육위원회는 지난해 1월 상견례를 겸해 한 차례 회의를 한 이후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입시나 등록금 문제처럼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정책이 아니다 보니 인성교육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의지 부족과 달리 대다수 학부모는 인성교육을 원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학부모 500명을 조사해보니 학교가 중시해야 할 교육 ‘1순위’로 부모들은 인성교육(44.8%)을 제일 많이 꼽았다. 창의성교육(20.4%), 진로·특기적성교육(14.4%)보다 앞섰다. 66.4%는 인성교육을 통한 인격 함양이 진로·진학 대비(25.4%)나 교과 학습을 통한 지식 습득(8.2%)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대전 선암초에 입학한 강아지 두 마리. 이 학교는 동물을 매개로 생명존중과 배려 등을 가르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4월 대전 선암초에 입학한 강아지 두 마리. 이 학교는 동물을 매개로 생명존중과 배려 등을 가르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은용(40·경기도 고양시)씨는 “공부는 학원에서도 할 수 있지만, 인성교육은 가정·학교에서만 가능하다. 학교에서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인성교육에 강한 의지를 갖고 학교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인 이성권 대진고 교사는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과목마다 인성의 중요한 가치와 덕목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의 근본 목표를 인성교육으로 수립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거의 주입식 윤리·도덕 교육을 넘어서는 것도 필요하다. 지은림 경희대 인성교육센터장은 “21세기 인성은 도덕성과 사회성·감성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자기조절력과 협력·배려·나눔과 같은 시민적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만·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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