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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통영 동백나무가 대통령과 함께 공군1호기 타고 독일 날아간 사연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에 옮겨 심어진  통영 동백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에 옮겨 심어진  통영 동백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경남 통영시청에 지난 3일 오후 2시쯤 청와대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까지 높이 1m 20㎝ 내외의 동백나무 3그루를 좀 구해 달라”는 다급한 협조요청이었다. 통영시 공원녹지과 측은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동백나무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높이 1m 20㎝ 내외의 동백이면 수령이 10여년 정도 된다. 통영에 동백을 키우는 양묘장은 많았지만 어린 동백나무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윤이상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를 채취한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 . 위성욱 기자

윤이상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를 채취한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 . 위성욱 기자

그러던 중 4시간 정도 지난 오후 6시쯤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의 한 개인 양묘장에 비슷한 크기의 동백나무 3그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달음에 달려간 통영시 공무원들은 발육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높이가 1m 20㎝ 정도인 동백나무 3그루를 준비했다.

청와대 측, 지난 3일 통영시에 "어린 동백나무 3그루 구해달라"요청 #지난 5일 김정숙 여사, 동백나무 1그루 독일에 있는 윤이상 묘에 심어 #윤이상의 딸 윤정씨 "아버지 꼭 고향 땅에 모셔오고 싶다"고 #오길남씨의 의혹제기와 보수 진영 반발 등으로 유해 송환 논란일듯 #극적으로 성사될 경우 독일로 보낸 동백이 다시 통영으로 돌아올수도

다음 날 오전 7시, 통영시 공무원이 직접 차를 몰아 상경해 애지중지 챙겨온 동백나무 3그루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청와대 측은 묘목 세 그루를 합쳐 모두 11만원에 구입했다.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 동백나무. 윤이상 선생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와 비슷한 수령이다. 위성욱 기자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 동백나무. 윤이상 선생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와 비슷한 수령이다. 위성욱 기자

이충환 통영시 공원녹지과장은 “청와대에서 대외비로 동백나무를 구해달라고 할 때는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묻지도 않고 급히 묘목을 구해만 줬다”며 “나중에 그 동백나무가 독일에 묻혀 있는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옮겨 심어졌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아직 이 양묘장 주인은 그 동백이 독일에 간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며 “청와대에서 대외비로 해 달라고 말해 아직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영시 공원녹지과 이충환 과장이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옮겨 심었던 동백나무가 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위성욱 기자 

통영시 공원녹지과 이충환 과장이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옮겨 심었던 동백나무가 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위성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문 대통령을 동행했다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참배했다. 윤씨는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참배에 앞서 동백나무 한 그루가 고인의 묘비 인근에 심어졌다. 이 동백나무가 바로 통영 세포마을에서 가져간 동백나무 3그루 중 한 그루였다. 이 동백나무는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 1호기를 타고 독일까지 날아갔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에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 그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저도 통영에 가면 동백나무 꽃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경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은)학창 시절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묘소와 식재된 동백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묘소와 식재된 동백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어른 어깨높이의 동백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김 여사가 헌화한 원형 모양의 꽃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번에 독일로 간 동백나무가 심겨져 있던 세포마을은 남해 바다가 보이는 조그마한 어촌마을이다. 윤이상 생가 터 인근에 있는 윤이상 기념관과 차로 15분 정도 거리다.
윤이상은 생전에 “아버지는 종종 밤낚시를 하러 바다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배 위에 앉아 물고기 헤엄치는 소리, 어부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였습니다. (중략)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오롯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윤이상 생가 터와 윤이상 기념관(기념공원)이 있는 도천동까지는 차로 15분 거리다. 기자가 9일 찾아간 기념관은 현재 리모델링(6월 12일~8월 31일)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윤이상 기념관 전경.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전경.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평소 타고 다니던 벤츠 승용차. 윤이상 기념관에 있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이 평소 타고 다니던 벤츠 승용차. 윤이상 기념관에 있다. 위성욱 기자

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의 딸 윤정(66)씨는 “언제나 마음으로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고 싶었지만 그동안 반대하는 쪽이 너무 많아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며 “그런데 이번에 김정숙 여사가 독일 방문 중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통영에 공수해간 동백나무 한 그루를 묘비 앞에 심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걸릴지라도 아버지를 꼭 다시 고향 땅에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정씨는 윤이상의 부인인 이수자(90)씨와 함께 살고 있다.

윤이상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사건'에 연루되면서 생전에 고향인 통영 땅을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이충환 통영시 공원녹지과장은 “윤이상 선생은 세계적인 음악가인데도 이념 논쟁 속에 살아 생전 고향땅을 밟지 못한 한과 그리움 등이 있었을텐데 이번에 통영의 동백나무가 묘소에 심겨지면서 그 한의 일부가 풀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 리모델링으로 인해 임시 휴관 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 리모델링으로 인해 임시 휴관 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위성욱 기자

그러나 윤이상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윤이상 부부가 수차례 북한을 방북했고, 김일성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친북 행위를 했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재독 간호사였던 ‘통영의 딸’ 신숙자(1942년생)씨와 경제학도였던 남편 오길남(75)씨 가족의 월북을 윤이상이 권유했다는 오씨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됐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오씨는 독일에 유학하던 1985년 월북했는데,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두고 오씨 혼자 탈북했다. 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신씨와 두 딸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수감됐고, 이후 북한 당국은 2012년 신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서한으로 유엔에 통보했다.
윤씨는 95년 숨지기 전에 독일에서 발행되는 한인회보에 게재한 육필 원고에서 오씨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윤씨는 "오씨를 77년 국제회의 때 먼발치에서 보고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가까이서 만난 적이 없다"며 "오씨 가족이 이북에 간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반박했다. 윤씨는 "탈북한 오씨가 86년 나를 찾아와 가족을 구출해 달라고 해서 90년 민족통일음악제 참석을 위해 평양에 간 길에 오씨 가족의 구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오길남씨의 의혹 제기와 윤씨의 과거 방북 행적 등으로 인해 고향인 통영에서조차 윤이상은 온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윤이상기념관이 있는 공원은 윤이상 이름을 달지 못한 채 도천테마파크로 불린다.

이런 논란과 갈등이 극복될 경우 독일로 날아간 통영 동백나무가 윤이상과 같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윤이상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를 채취한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의 한 개인 양묘장 모습. 위성욱 기자

윤이상 묘소에 심겨진 동백나무를 채취한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의 한 개인 양묘장 모습. 위성욱 기자

통영=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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