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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에게 배우는 노년의 지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9호 32면

숨 가쁜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나면, 인생 후반기의 삶을 지탱하며 갈 만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과는 관계없이 그저 내가 즐거워 빠져들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이 책의 저자, 그리고 함께 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 50대 이상의 어른들은 ‘그림책’을 그 친구로 정했다. 어릴 적 읽었거나 자녀들에게 읽어줬던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다시 꺼내 한 장면 한 장면 음미하며 읽는다.『아낌없이 주는 나무』『꽃들에게 희망을』『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중년을 넘어가며 읽는 동화책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온다.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저자: 유경 #출판사: 궁리 #가격: 1만3000원

CBS 아나운서 출신인 저자는 노인 관련 방송을 진행하다 노년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어르신사랑연구모임(어사연)’을 이끄는 노인 복지 전문가다. 혼자 읽던 그림책을 어르신 대상의 강의에 들고 나가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다. “어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삶의 나이테 없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눈물과 뭉클함과 가슴 떨림이 그림체 사이사이로 스며들곤” 했다. 책은 인생의 후반기에 생각해봐야 할 주제로 이름·부모·고향& 추억·청춘·꿈·일·몸·나이·관계·떠남 등 10가지를 제시하면서 생각의 물꼬를 터 주는 그림책을 골라 소개한다.

미국 동화작가인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림책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는 주변의 모든 것에 이름 붙이기를 즐기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존재에게만 이름을 지어준다. 이런 할머니의 집에 늙은 강아지 한 마리가 매일 찾아오고, 할머니는 먹이를 주면서도 이름은 지어주지 않는다. 늘 찾아오던 강아지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할머니는 강아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막막하다.

아이들에게 이 동화는 이름의 의미와 소중함을 가르치는 동화지만, 어른들에게는 더 깊은 공감을 안긴다. 주변의 사랑하던 것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자신보다 먼저 사라질 존재에게는 아예 이름을 주지 않기로 결심할 만큼 할머니의 슬픔과 외로움은 깊다. 하지만 이름 없는 강아지와 헤어졌다 다시 만난 할머니는 깨닫게 된다. 아무리 가슴 아픈 기억을 남기고 떠났다 해도, 내 곁에 잠시 머물러 주었다는 것 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생쥐와 고래의 우정을 그린 윌리엄 스타이그의 『아모스와 보리스』에서는 서로 달라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 다름을 보듬어가며 수십 년 간 이어 온 사랑과 우정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평생 빨간 구두를 갖고 싶어했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의 빨간 구두』(조안 도날드슨 글, 도리스 애틀링어 그림)는 젊은 시절 꿈이라고 불렀으나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꿈을 꿔야 할 이유를 들려준다.

그림책을 읽는다는 건 어른인 지금도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 화해하는 일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제 안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칭찬 받고 이해 받고 싶어하는 아이입니다. (…) 해를 더하면서 제 안에 있는 아이도 나이를 한살씩 더 먹어서 좀 더 키가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다가올 노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노년의 롤 모델(Role model)을 찾을 것, 몸과 마음 다스리는 연습하기, 주변의 사람 아끼기, 그리고 경제적 준비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 찾기 등이다.

이 책은 출판사가 기획한 ‘행복한 이모작 학교’ 시리즈의 첫 권이다. 50대 이상의 세대를 ‘베이비부머 세대’도 ‘시니어’도 아닌 ‘50+’라고 명명하며 중년 이후의 삶과 나이듦에 관해 제대로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시리즈다. 50대 이후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50+를 위한 심리학 수업』(강현숙 지음), 인생 후반기의 주거 계획을 제안하는『쫌 앞서가는 가족』(김수동 지음)도 함께 출간됐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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