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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외모 사그라지는 만큼 내면을 키우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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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06면

정규6집 ‘블랙’ 자켓 표지

정규6집 ‘블랙’ 자켓 표지

이효리(38)의 궤적, 한 편의 드라마다. 가수 이효리와 예능인 이효리, 인간 이효리가 마구 섞여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좌표를 그리고 있어서다. 1998년 걸그룹 핑클로 데뷔해 내년이면 데뷔 20년차를 맞는 그는 청순ㆍ섹시ㆍ걸크러쉬ㆍ소탈ㆍ에코페미니즘 등 여성 연예인이 선보일 수 있는 대다수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마구잡이 섭생의 결과가 아니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그가 “정신수련”을 외치며 요가를 한다. 생명평화 무늬를 문신으로 새기고, 동물보호에 앞장서며 채식을 한다. 자의식이 뚜렷하다. 그런 이효리가 “스스로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보니 누가 하라고 할 때 안 하던 것과 달리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며 새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 4년 만의 정규 6집 ‘블랙(BLACK)’이다.

6집 앨범 ‘블랙’으로 돌아온 가수 이효리

앨범 발매에 앞서 그는 일상부터 열어젖혔다. 막 시작한 JTBC-TV ‘효리네 민박’에서 제주 살림집을 민박집으로 운영하며 일반인 숙박객을 받고 있다. 방송에서 그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이른 아침마다 요가를 하고 유기견을 키우고 남편과 심심한 듯 알콩달콩 지낸다. 방송 이후 그의 남편 이상순(밴드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은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출연자 화제성 2위(1위 이효리)에 오르기도 했다.

“멀리 뛰기 하기 전 뒤로 물러서는 느낌”으로 4년간의 공백기를 보냈다는 그는 “TV에 몇 년 안 나오니까 동네 초등학생도 저를 모르고…, 제주에서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내가 평범한 사람이구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그런 이효리를 새 앨범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블랙이라는 색과 동명의 타이틀곡과 앨범명을 통해서다.

“그간 저를 수식하는 컬러가 많았어요. 화장도 옷도 다 걷어냈을 때 과연 저는 어떨까, 사람들이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좋아할까라는 의문점이 생겼어요. 제 안에는 어둡고 슬픈 마음도 있는데 밝은 면만 사랑받는 게 서글펐어요. 진짜 저를 내던져볼까 하는 생각으로 ‘블랙’이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6집 앨범에서 그는 총 10곡 중 9곡을 작사하고, 8곡에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셈이다. 그는 “이전처럼 화사하지 못할 거라면 깊이 있는 느낌으로 가자고, 직접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제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려 애썼다”고 전했다.

서사적으로도 3집(‘잇츠 효리시’)이나 4집(‘에이치 로직’)과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는 “‘이효리가 최고’라고 했던 시절에서 시간이 흐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가 지금 최고가 아닌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어 기다렸고, 할 말이 생겨 노래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노래 속에서 이효리는 가여운 나의 작은 별 서울을 이야기하고(‘서울’), 이십대 자신에게 예쁘다고 위로하며(‘예쁘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그대는 이미 다이아몬드(‘다이아몬드’)라며 말 건넨다.

좁은 음역대의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늘 있었다. 수록곡 ‘비야 내려’에서 그는 피아노 연주에만 맞춰 노래부른다. 뚜렷이 들리는 목소리가 세련되지 않다. 그런데 이마저도 인정한다.

“노래를 뽑아낼 수 있는 엄청난 가창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 장르를 피해왔어요. 기교 있게 잘하지 못하지만 마음 있는 대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효리만큼 자신의 현재 좌표를 잘 읽고 움직이는 스타가 또 있을까. 여성 뮤지션으로서 그가 밝힌 포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뮤지션은 나이 들수록 깊어지고, 음악의 폭도 넓어지게 마련이잖아요. 여성 뮤지션의 경우 외모가 사그라진다고 관심이 줄어드는 게 아쉬워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 받아들이고 내면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외모가 줄더라도 결국 질량은 똑같아지잖아요. 울림 있는 음악으로 점차 사랑받는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키위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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