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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르포] '보수텃밭' 대구는 이제 옛말?…지지율 곤두박질치고 '한국당 장례식'까지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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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가만히 보니까예. 최순실 사건 보이소. 그기 다 보수 쪽에서 잘못한 거 아닙니꺼.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고예 바른정당도 같은 보수니 그기 그거같고…."
 7일 오전 대구시 동구에서 만난 택시 기사 손동근(55)씨는 푸념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보수를 지지하긴 하는데,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너무 실망을 해가지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두고) 어떤 보수를 지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의 정치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대통령 탄핵, 대선을 거쳐오면서 오랜 기간 지켜오던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무너지고 있다.

요동치는 보수 텃밭 TK민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거치며 보수 전체에 대한 실망 커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장례식 퍼포먼스 열리기도 #자유한국당, 최근 여론조사서 바른정당에 밀리기도 #"합리주의 표방 젊은층 늘면서 지역주의 사라져가" #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동현(25·달서구 월성동)씨는 지난 5월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다. 이씨는 "대구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보수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고 보수정당이 분열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 침구류를 파는 윤옥선(63·여)씨는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탄핵 이후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 없다. 탄핵 전처럼 TK 지역민의 굳건한 지지를 얻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유동현(23·계명대) 씨는 “자유한국당은 쇄신의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여론 조사에서도 달라진 TK 민심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2주차부터 대구·경북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 갤럽의 가장 최근 조사(6월 5주) 에선 대구경북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10%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33%, 국민의당 4%, 정의당 5%다. 바른정당은 18%로 자유한국당을 8%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TK의 국회 의석은 총 25석. 자유한국당 20석, 바른정당이 2석, 더불어민주당 2석, 새누리당 1석이다. 자유한국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정당지지율은 바닥 수준이다.

7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유한국당 대구시당ㆍ경북도당 당사 앞에서 자유한국당 해체를 바라는 시민들이 '행복한 장례식'을 열고 있다. 이들은 주말에도 도심 집회와 장례식을 계속 열 예정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7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유한국당 대구시당ㆍ경북도당 당사 앞에서 자유한국당 해체를 바라는 시민들이 '행복한 장례식'을 열고 있다. 이들은 주말에도 도심 집회와 장례식을 계속 열 예정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7일 오후 7시 대구 수성구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앞에서는 대구경북민권연대 등 시민들이 모여 자유한국당 해체를 바라는 '행복한 장례식'을 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 이창욱 대구경북인권연대 회원은 "우리 마음 속에서 잊혀져야 할 분들"이라며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 먼저 자유한국당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가 박수를 치고 있다. 당원들이 축하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가 박수를 치고 있다. 당원들이 축하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조직부장은 "정당을 해체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정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건 실감하지만, 홍준표 대표가 선출되면서 다시 보수층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TK지역에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홍준표 대표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칠성시장에서 해산물 가게를 하는 전강일(41)씨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에는 홍준표 대표 말고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장에서 만난 양모(70)씨는 “상당수 사람들이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박 전 대통령이나 홍준표 대표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홍준표 대표는) 말이 거칠고 너무 자기 사람으로만 당을 이끌어 가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년 6·13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보수정당에서도 전열 재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대선을 거치면서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보수에 대한, 특히 자유한국당에 대한 실망감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여기에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젊은층이 늘면서 무조건적인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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