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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울교육청·교원단체들 "학교폭력, 학생부 적지 말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야! 너, 우리한테 물총 쏘지 마라니까!”
지난봄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3학년 학생 너댓명이 자신들을 향해 물총을 쏘는 같은 학교 친구 하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물총을 쥔 아이는 “내 총으로 내가 노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맞받아쳤다. 서로 옥신각신하다 약이 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하지 말랬잖아”하며 물총 가진 친구를 한 대씩 때렸다.

조희연 교육감 "경미한 징계, 학생부 기재 말자" #서울교총 ·전교조 "엄벌주의 때문에 학부모들 소송" #2011년 대구 권군 계기로 학폭 근절 위해 의무화 #하지만 초중고생 중 89% "학생부 기재해야" #피해자단체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인권 챙기나" #"경미하다고 안 적으면 가해자들 징계 낮추려 할 것"

아이들의 다툼은 학부모들 귀에 들어갔다. 부모들은 학교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언쟁이 이어졌다. 학교 측은 “양측 모두 가해 책임이 있다”며 학생 전원에게 ‘서면 사과’ 처분을 내렸다. 양측은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교총, 전교조 서울지부 등 교원단체들이 최근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생화기록부에 기재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친 엄벌주의로 학교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학생 중 89%가 '학생부 기재'를 요구하는 것과 상반된다. [중앙포토]

서울교육청과 서울교총, 전교조 서울지부 등 교원단체들이 최근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생화기록부에 기재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친 엄벌주의로 학교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학생 중 89%가 '학생부 기재'를 요구하는 것과 상반된다. [중앙포토]

부모들이 학폭위 조치를 이토록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학교 측은 "학폭위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학교 학생생활부장 교사는 “부모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자기 아이의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기재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 사이에서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학부모 중 한 명도 이 같은 현실을 인정했다. 학부모 A씨는 “솔직히 가·피해 상황이 뒤섞여 있다는 학교 측 설명에 나도 수긍한다. 하지만 서면 사과를 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데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가해 학생이 징계 처분을 받으면 이 사실이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지난 2011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권승민군(당시 13세) 사건 이후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학생부 기재’가 떠올랐고 당시 교육부가 관련 법규를 고쳐 이를 의무화 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 서울교총이 ‘학생부 기재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교총, 전교조 서울지부는 “단순한 다툼이 학폭위를 거치며 행정심판·행정소송으로 번지는 일을 막자”며 “학교폭력에 대한 엄벌주의를 완화하자”고 나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달 22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인 수업·생활지도보다 학교폭력 처리를 위해 법률 업무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학교는 학생 간 다툼과 갈등을 법이 아닌 교육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등은 ‘학폭위에서 처분받은 사항은 전부 학생부에 기재토록 한다’는 내용의 교육부 지침부터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 교육감은 “경미한 처분까지 모두 학생부 기록으로 남으니, 자녀가 진학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학부모는 가해 내용을 끝까지 부인·발뺌하는 ‘무한 이기주의’를 보이게 된다. 경미한 처분에 해당하는 ‘서면 사과’(1호), ‘접촉 금지’(2호), ‘교내 봉사’(3호)는 학생부에 기재하지 말도록 하자”고 교육부에 제안했다.

가해 학생 부모들의 반발, 부모들 사이의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교사들도 이에 찬성하고 있다. 8년째 학생생활지도부를 맡고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부장교사는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다. 따돌림 등 정신적·심리적 피해를 호소하는 대다수 학폭 사건은 피해 학생의 오해인 경우도 많다. 이를 모두 징계하고 처벌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학교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의 학생생활지도부 교사도 “가해자도 결국 어린 학생에 불과하다. 사소한 다툼으로 학폭위에 회부돼 징계를 받아 상급학교 진학이 막히는 등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다. 학생 절대 다수가 ‘학생부 기재는 필요하다’고 본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이 실시한 ‘2016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청예단이 초·중·고교생 7531명에게 ‘학폭위의 조치를 학생부에 기재해야 하나’고 물었다. 이 질문에 ‘기재해야 한다’고 답한 학생이 89%(6699명)나 됐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도 현재보다 더 강화하길 희망한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효과적인 방안’을 여럿 중에서 고르게 했더니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를 선택한 학생이 18.8%나 됐다. ‘정기적인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19.1%) 다음으로 제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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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서울교육청과 교원단체들이 ‘학교폭력 처벌 완화’ 요구에 대해 “학교폭력 사건을 ‘피해자 보호’가 아닌 ‘가해자 인권’에 맞춰 처리하겠다는 주장이며 어불성설”이라 반대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학폭 사건이 벌어지면 대다수 학교에게 피해자는 뒷전이다. 학교가 ‘가해자 인권 보호’ 운운하며 사안을 은폐·축소하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수준이 무슨 ‘엄벌주의’냐. 학생부 기재를 않고 처분을 완화하자는 것은 학교와 교육청이 학폭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교폭력에 희생된 대구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53)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임씨는 “잘못한 일에 대해 벌을 받고 책임을 지는 것은 상식이다. 가해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를 ‘엄벌주의’라며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교폭력 피해자 학부모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멍에를 씌우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 교실에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학교의 의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피해자 입장에 선 쪽에서 ‘경미한 처분은 학생부에 적지 않는 것’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학교폭력 전문 홍승민 변호사(법무법인 담솔)는 “서울교육청 요구를 받아들여 1~3호 처분만큼은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4호 이상 처분을 받은 가해자들은 처분을 3호 이하로 낮추려고 행정심판을 요구해 법적 분쟁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나 처벌을 놓고 교사와 학생이 상반되는 입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생들만큼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민감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차민희 청예단 학교폭력SOS지원단 통합지원팀장은 “학교폭력이 과거의 ‘신체적 폭력’에서 ‘관계적 폭력’으로 바뀌고 있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교묘하게 따돌린다. 피해자는 자해나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외관상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사 중 일부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넘기는 경우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보다 앞서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일본에선 학교폭력의 양상이 변모했다. 신체적 구타 등이 줄었다고 해서 ‘학교폭력 무관용’을 후퇴시켜선 안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학교폭력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일본에서도 학교폭력 처벌이 강화되자 학교폭력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바뀌는 ‘음습화’ 현상이 나타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음습화된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부소장은 “학교폭력은 끝까지 밝혀내고 처벌한다는 ‘무관용주의’를 고수하되, 가해자도 학생인만큼 한번 실수에 대해 반성하고 회복할 기회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해나가는 단계적 개선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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