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철폐 시위 참가자, 재심서 38년 만에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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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2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유신헌법 공포식.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는 내용이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1월 21일 91.5%의 찬성률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중앙포토]

1972년 12월 2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유신헌법 공포식.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는 내용이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1월 21일 91.5%의 찬성률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중앙포토]

1970년대 후반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옥살이를 한 60대가 3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9월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나 시위를 금지한다’는 이른바 ‘유신 집시법’인 구 집시법 3조1항3호 등의 위헌 결정에 따른 것이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 이석재)는 6일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이 확정된 이모(66)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1978년 8월 1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에서 동료들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정권 타도’,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진압 중인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다.

당시 수사기관은 이씨에게 긴급조치 9호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이씨는 이듬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됐다.

이후 이씨는 2013년 4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미 대통령 긴급조치 9호가 위헌ㆍ무효로 판단된 만큼,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당시 경찰관의 진압행위가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었고, 따라서 이에 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면서 “경찰의 강경한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점, 다친 경찰관의 피해 정도가 가벼운 점 등을 감안할 때 무죄를 선고한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신청한 구 집시법 일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구 집시법 3조1항2호 등 집회와 시위를 제한한 일부 조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선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이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해 기본권 제한의 구체적 기준을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조항으로, 1962년 12월 31일에 제정된 구 집시법 3조1항2호, 3호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미치게 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조항을 뒀다. 이 조항 때문에 당시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ㆍ시위 참가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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