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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변속차 장점 많은데 … 한국시장선 ‘멸종’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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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그 많던 ‘스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동 변속기 차량이 국내에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국내에 판매한 62만7309대(15t 이상 대형 트럭·버스 등 제외) 중 수동 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은 7734대(1.2%)에 불과했다. 수동 변속기 차량 판매가 계속 저조한 상황이라 올해는 판매 차량 100대 중 한 대도 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생산차 100대 중 1대도 안 돼 #연비 좋아지고 도로 사정 나빠 밀려 #값 저렴하고 집중도 높이는 장점 #유럽선 수동 변속차가 자동의 4배

다른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본지 조사 결과 지난해 쌍용자동차가 국내에 판매한 전체 차량 중 수동 변속기 차량은 508대(0.49%)에 불과했고, 올해 상반기는 더 줄어서 전체 판매 차량 중 200대(0.37%)만이 수동 변속기 차량이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수동 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 아예 없었다. 그나마 한국GM의 경우 경차와 소형차인 스파크와 아베오의 수동 변속기 차량 판매 비중이 각각 15%, 7%로 높은 편이었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트랙스는 역시 2% 수준이었다.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에서 수동 변속기가 외면받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아직 수동 변속기가 대세다. 글로벌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지난해 낸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유럽에서 판매된 차량 중 자동 변속기 차량은 312만여 대, 수동 변속기 차량은 1192만여 대로, 수동 변속기의 판매량이 훨씬 높았다.

한국에서 수동 변속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이유로는 한국 특유의 도로 상황이 첫 번째로 꼽힌다. 차량 정체가 심해 잠깐씩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일이 잦고, 언덕과 오르막이 많아 운전에 서툰 사람이 수동 변속기 차량을 몰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자동 변속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가격과 연비 차이가 줄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에도 수동 변속기만이 가진 매력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 여전히 자동 변속기 차량보다는 100만원 이상 저렴한 차량 가격, 10% 정도 뛰어난 연비, 그리고 결정적으로 ‘운전하는 맛’ 때문이다. 최근에는 클러치와 가속 페달, 기어를 동시에 조작해야 하는 수동 변속기 차량이 운전 집중도를 높여줘 사고 확률을 줄여준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자동 변속기 차량의 좌·우회전 추돌사고와 교차로 추돌사고 확률이 수동 변속기 차량에 비해 1.85배 높다는 일본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고령 운전자의 집중도 하락에 따른 교통 사고와 최근 자주 발생하는 급발진 사고를 수동 변속기 차량 부활을 통해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같이 밟아야 하는 수동 변속기의 특징상 급발진 오작동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동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지만, 국내에선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고를 수 있는 차량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중·대형 상용차를 제외한 전체 21종의 차량 중 수동 변속기 선택이 가능한 차량은 엑센트와 아반떼 등 6종이며, 기아차도 모닝·레이 등 6종 뿐이다. 한국GM 역시 수동 변속기가 장착된 모델은 스파크·아베오·트랙스가 전부다.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얼마 전 수동 변속기 차량을 구입하려다 포기한 자영업자 서정훈(31)씨는 “‘스틱차’로 운전을 배웠고, 운전하는 재미도 쏠쏠해 사려고 찾아봤지만 선택지가 너무 적어 결국 포기했다. 수동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데 살만한 차가 너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나름 할 말이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관계자는 “자동 변속기 등장 이후 수요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수동 변속기 장착 차량도 줄어들게 됐다.

수동 변속기를 찾는 사람들의 불만도 이해는 가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생산 종류를 단순화하는 게 더 유리한데다 수요도 적으니 차종을 늘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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